AI 창궐에 커지는 '휴업보상제' 요구…"농가 수입보전해 겨울입식 제한"
부분 시행은 효과 기대하기 어려워…농림부 "지자체 건의하면 신중 검토"

겨울철이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올해도 전국을 강타했다.

지난 15일 전남 해남의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H5N6형) 감염이 확인된 이후 9일 만에 전국적으로 확진 농가가 9곳으로 늘고, 10곳은 정밀검사가 진행 중이다.

그사이 닭과 오리는 93만2천마리나 살처분됐다.

AI로 매년 반복되는 막대한 피해에 가금류 사육농가들은 정부 차원의 효과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그 대책의 하나로 제기되는 것이 '휴업 보상제' 도입이다.

휴업 보상제는 가을철에 미리 도축해 닭이나 오리 고기를 비축한 뒤 AI가 창궐하는 겨울철에는 사육을 중단하고, 그 대신 정부가 농가에 사육 중단에 따른 보상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AI 바이러스가 활동할 때 가금류를 키우지 않으면 감염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예산인데 해마다 AI 때문에 드는 방역비나 살처분 보상금을 고려하면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AI가 극에 달했던 2008년 전국적으로 1천500개 농가에 3천70억원에 달하는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 소득안정 지원금, 입식 융자 등이 지급됐다.

2014년 상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782개 농가에 살처분 보상금 등으로 2천380억원이 나갔다.

마광하 한국오리협회 광주·전남지회장은 "살처분 보상금, 공무원 동원, 여러 행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하면 휴업보상금으로 지급되는 예산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 회장은 "예산은 예산대로 들어가고, 온 국민이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겨울 입식 제한을 제도화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충남 천안에서 오리농장을 운영하는 이모(33)씨는 "휴업 보상제를 시행한다면 10월 말 마지막 출하를 끝으로 11∼2월 중순까지 농장 문을 닫게 돼 수천만원을 포기해야 한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휴업 보상금이 지급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휴업보상제 도입이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충북도는 AI와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 발생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 과제 18건을 농림축산식품부에 건의하면서 휴업보상제 도입을 포함했다.

당시 농식품부는 지역마다 특수성이 달라 정부 차원의 일괄 시행은 어렵다며 필요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재량에 따라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놨다.

하지만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자체 차원의 휴업보상제 시행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기도 전체 오리 사육량의 60%를 차지하는 안성시는 지난해 자체적으로 휴업보상제를 시행했다.

안성시는 휴업보상제에 참여하는 농가에 대해 새끼오리 1마리당 500원을 보상했다.

그러나 예산이 넉넉지 않아 AI가 발병한 적이 있는 서운면과 미양면 등에 한해서만 부분적으로 시행했고, 그마저도 제때 보상금을 지급 못 해 농가의 불만을 샀다.

안성시 관계자는 "전액 시비로 충당해야 하다보니 예산이 부족해 우선 중점관리지역 농가에만 보상을 해주고 있다"며 "이 때문에 도비와 국비 지원을 여러 번 건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일선 지자체들은 전국적으로 동시 시행하지 않으면 휴업보상제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전남 최대 가금류 사육지인 나주와 영암 밀집지역을 한시적으로 폐쇄한다고 해도 휴업보상제를 시행하지 않는 곳에서 사육량을 늘리면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휴업보상제를 지자체에 맡기면 예산에 따라 시행하는 곳과 시행하지 않는 곳이 엇갈려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전국적으로 동시 시행해야만 기대하는 방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식품부 관계자는 "지역마다 여건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휴업보상제를 시행한다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며 "다만 일선 지자체나 관련 협회 등으로부터 정식으로 정책 건의가 들어오면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손상원·우영식·전창해·한종구·홍인철)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