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법정 공방과 각종 논란 속에서 성사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을 둘러싼 검찰 수사의 타깃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지난해 양사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과정을 둘러싼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23일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 수사에서 청와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잡힌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측에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합병반대 '엘리엇' 전면전 나서…치열한 법정공방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5월 26일이다.

이후 양사 합병의 정당성과 합병 내용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메니지먼트가 합병 발표 이튿날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이 불공정하다'면서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하고 나선 것이 논란의 중심이 됐다.

엘리엇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삼성물산 주식을 추가로 사들여 지분율을 7.12%로 높였다.

3대 주주로 올라선 엘리엇은 작년 6월 4일 삼성물산에 현물배당을 위한 정관 개정을 요구하고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 등을 상대로 서한을 보내 합병 반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같은 달 9일에는 법원에 삼성물산의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주총 안건인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막기 위한 법적 조치였다.

그러자 삼성도 반격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엘리엇의 가처분 신청 이튿날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5.76%의 의결권을 살리기 위해 '백기사'로 나선 KCC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엘리엇은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해 위법 소지가 있다'며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맞섰다.

또 소액 주주들을 개별 접촉해 반대 세력을 규합하고자 삼성물산에 주주명부와 이사회 회의록의 열람 및 등사를 요구했다.

같은 달 19일 열린 가처분 신청 첫 심문에서 엘리엇은 "삼성 오너가가 삼성전자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엘리엇이 단기차익을 노리고 삼성물산을 껍데기로 만들려는 악의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7월 1일 엘리엇이 낸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데 이어 같은 달 7일에는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도 기각했다.

◇ 삼성 vs 엘리엇 '주주마음 얻기' 총력 대결

법정 싸움은 일단 삼성의 승리로 귀결됐으나 삼성과 엘리엇 등 반대 세력의 공방은 이어졌다.

이에 따라 합병을 결의하는 주총이 예정대로 열리더라도 표 대결에 들어갔을 때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빚어졌다.

이 때문에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태도가 최대 이슈로 부각됐다.

국민연금은 엘리엇이 지분 7.12%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지난해 6월 4일부터 같은 달 9일까지 149만8천930주의 삼성물산 보통주를 장내 매수해 0.96%의 지분을 추가 확보했다.

이로써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보유 지분은 지난해 6월 3일 9.92%에서 같은 달 30일 현재 11.61%로 늘었다.

삼성그룹과 엘리엇이 합병안 표결을 앞두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1% 가까이 늘림으로써 캐스팅 보트를 한층 더 확실히 쥐게 된 셈이었다.

찬·반 세력 규합에서 엘리엇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엘리엇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견해'라는 27쪽 분량의 영문 설명자료와 한글 자료를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이에 맞서 새 홈페이지 '뉴삼성물산'을 새로 만들어 합병의 배경과 당위성을 해명했다.

제일모직도 긴급 기업설명회(IR)를 열어 주주친화 정책과 거버넌스위원회 신설 등 지배구조 개선 정책을 제시했고 삼성물산 임직원들은 해외에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을 직접 만나 대면 설득에 나섰다.

삼성 측의 홍보전은 외국 해지펀드 공격에 토종 기업을 지켜내야 한다는 애국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 ISS 등 의결권 자문사 반대 권고 속 국민연금 찬성 결정

그러나 삼성은 복병을 만났다.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투자자들에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당시 ISS는 제일모직의 고평가된 주가를 고려했을 때 적정한 합병 비율이 1대 0.95는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ISS에 이어 의결권 자문시장 2위 업체인 미국의 글래스 루이스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도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는 합병에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권고했다.

위기감을 느낀 삼성물산은 "국내 시장 현실을 도외시한 보고서"라며 반박 입장 자료를 배포하는 한편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를 상대로 한 설득 작업을 한층 더 강화하고 나섰다.

먼저 이재용 부회장이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직접 만나 합병 배경 등을 설명했다.

지난해 7월 7일 강남 삼성사옥에서 진행된 양측의 비밀 회동에는 삼성 측 실무진 3∼4명과 국민연금 실무진 3명 등이 배석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배석자는 "비공개 일정이었지만 공식적인 만남이었다"면서 "이 부회장은 이번 합병에 대한 시장이나 주주들의 우려를 잘 안다.

그런 걱정이 문제 안 되도록 회사를 잘 꾸려나가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은 결국 작년 7월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위원 12명 중 8명의 찬성으로 합병 찬성 입장을 정했다.

이후 다른 국내 기관 주주들도 잇따라 찬성 의사를 결정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던 삼성물산은 주총을 나흘 앞둔 13일에는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고 '주식 단 한주라도 위임해 달라'고 소액주주를 상대로 호소했다.

주총 전날까지 삼성물산 임원부터 평사원까지 가동해 소액주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에 나섰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은 물론 삼성그룹 전 계열사 임직원이 동원됐다는 얘기도 있었다"면서 "작년에 더운 여름 수박 한 통 사들고 찬성을 호소하는 삼성 임직원들을 여의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엘리엇도 폴 싱어 회장이 13년 전 한일 월드컵 때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반대 여론 결집에 나섰다.

그러나 작년 7월 17일 열린 주총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은 통과됐고 같은 해 9월 1일 양사는 공식 합병했다.

합병 결의를 공표한 이후 정확히 66일 만이었다.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진행 일지(2015년)
▲ 5.26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결의 공시
▲ 5.27 = 엘리엇,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의사 표명
▲ 6.4 = 엘리엇, 삼성물산 지분 7.12% 보유 공시
▲ 6.9 = 엘리엇,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 6.10 = 삼성물산, 자사주 5.76% KCC에 처분 결의
▲ 6.11 = 엘리엇,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
▲ 7.1 = 법원,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 7.3 = 자문기관 ISS,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 권고
▲ 7.7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회동
▲ 7.7 = 법원,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 7.10 =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열어 삼성물산 합병 찬성 결정
▲ 7.17 = 삼성물산·제일모직, 각각 임시 주총 열어 합병 안건 가결
▲ 9.1 = 삼성물산·제일모직 공식 합병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hyunmin6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