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사제도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이었다. 특검이란 용어가 처음 한국 정치권에 등장한 때는 1988년 12월. 당시 야당이던 평민당은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와 ‘5공 정치권력형 비리조사특위’ 활동이 제대로 진전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특별검사의 임무와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안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폐기됐다. 그 이후에도 1993, 1994, 1995, 1996년 네 차례에 걸쳐 특검법안이 발의됐지만 정치적 분쟁에 휩싸이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99년 특검이 처음으로 도입된 배경에는 ‘3대 의혹 사건’이 있었다. 장관 부인 옷 로비 사건과 여당의 3·30재보선 돈 살포,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등이었다. 당시 현직 검사장이 연루돼 있어 중립적 수사를 할 수 있는 특검의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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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특검의 역사] 최순실 특검…12번째 '용두사미'로 끝나나, '몸통' 잡나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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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로 끝난 11번의 특검

첫 특검부터 반전이 있었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검의 수사 결과가 검찰 수사와 반대로 나왔다.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이 술김에 “1998년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가 유도한 것”이라는 발언을 해 시작된 사건이었다. 검찰은 진씨를 구속 기소했지만 특검은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같은 해 옷 로비 특검도 ‘실패한 로비’라는 결론을 내려 의혹 규명에 실패했다. 최순영 신동아그룹의 부인 이형자 씨가 외화 밀반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남편을 구하기 위해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등에게 값비싼 옷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였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특검의 체면을 구겼다. 이용호 G&C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당시 특검은 핵심인물로 지목된 김영준 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밝히지 못한 채 끝났다. 이후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은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가로 현대그룹 자금이 북한에 흘러들어간 의혹을 수사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측에 5억달러의 돈이 들어간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박지원 씨가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꼬리 자르기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은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핵심 측근인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 등이 금품을 받은 혐의를 수사했다. 최씨가 4억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만 밝혀냈고 나머지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2005년 유전개발 의혹 특검도 성과 없이 끝났다. 철도공사의 사할린 유전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이 있었는지를 가려내기 위한 특검이었다. 수사팀은 90일 동안 240여명을 소환조사했지만 모두 ‘근거없음’으로 결론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도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용두사미’였다. 삼성그룹의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 고발로 시작된 특검은 삼성을 둘러싼 비자금 조성, 불법 경영권 승계, 정·관계 로비 등을 수사했다. 결론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승계상 문제와 조세 포탈 혐의를 밝히고 핵심 간부 몇몇을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이명박 당선인 BBK 주가조작 의혹 특검도 ‘혐의와 무관’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2010년 스폰서 검사 특검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근무한 검사 수십명이 건설업자로부터 불법 접대를 받은 의혹을 수사했다. 특검은 검찰 고위간부를 비롯한 검찰 수십명의 실명이 담긴 리스트를 확보하고도 일부만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2012년 ‘2011 재·보궐선거 디도스 사이버 테러’ 특검은 일부 여당 의원 비서가 서울시장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와 박원순 시장의 홈페이지에 디도스 테러를 했다는 의혹을 수사했다. 특검팀은 윗선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결론과 함께 일부 관계자를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의혹 특검은 가장 최근의 일이다.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을 비롯해 관계자 3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특검 현판을 내렸다.

여론과 법리 사이에서 고민해 온 특검

특검은 권력형 비리 사건을 주로 다뤘다. 국민에게 수사 내용을 알릴 의무도 있다. 그러다 보니 특검은 여론과 법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에서 ‘사형’이라 말해도 법리적으로는 ‘무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에게는 여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적 중립성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 출신이 특검을 많이 맡는 이유 중 하나는 여론이 아니라 법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훈련이 돼 있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중립성이 특검의 존재 이유기도 하다”고 말했다.

야당이 추천한 후보 중에서만 특검이 임명되는 이번 특검법안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검 결과를 놓고서도 야당의 정파적 판단에 따른 결과라며 ‘정치특검’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2010년 스폰서 검사 특검을 지휘한 민경식 변호사(66·사법연수원 10기)는 “개인적으로는 변호사단체가 특검을 추천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고윤상/이상엽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