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발(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인가. 검찰이 정·관계 로비의 귀재로 알려진 이영복 엘시티(LCT) 시행사 대표(청안건설 회장·66·사진)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그의 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은 2조7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개발사업인 부산 해운대 엘시티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인물로, 530억원대의 횡령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석 달가량 잠적했던 이 회장이 지난 10일 갑자기 검찰의 칼날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터라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 이어 정국에 또 다른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국 새 뇌관 된  부산발 '엘시티 게이트'
3개월 만에 나타난 이영복 회장

가장 궁금한 대목은 이 회장이 왜 현시점에 자수를 택했느냐다. 1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이 8월8일 잠적한 이후 검찰 수사는 답보상태였다. 검찰은 지난달 11일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봐주는 것 아니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8일 자수하기로 결심했다. 복잡한 심경을 나타내는 것을 걱정한 가족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그는 오후 9시께 서울 모 호텔 근처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 회장의 심경 변화에는 검찰의 전방위 압박과 설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검찰은 지난달 24일을 기점으로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에서 부산지검 특수부로 이관하고 수사팀을 확대했다. 공교롭게도 24일은 최순실 씨(60·최서원으로 개명)의 태블릿PC에 들어 있는 대통령 연설문 보도가 나온 날이다.

검찰과 물밑 접촉설도 나와

‘이영복 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탄 이유로 여러 가지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로 최근 구속된 최씨와 몇 년 전부터 매달 곗돈이 1000만원 이상인 ‘황제계’를 해왔고, 도피 중에도 곗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혀 낼 핵심 인물일 수 있다고 보고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날 오전 3시 부산지검 청사로 들어서기 전 ‘최씨와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없다”고 말했다.

음모론도 나돈다. 이 회장과 검찰의 물밑 정지작업이 마무리됐고, 검찰이 부산 지역 정치인들을 ‘타깃’으로 정했다는 관측이다. 이 회장의 ‘떡값’을 받지 않은 부산 지역 정치인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는 로비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자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 7월 친분 있는 여권 실세 A씨를 통해 수사를 무마할 수 있는지를 타진하는 등 3개월 이상 정·관계 인맥을 동원해 검찰과 ‘빅딜’을 시도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영복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 검사는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법조계 고위 인사는 “부산 지역 정·관계 유력 인사들의 연루설이 사실로 확인되면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회장의 체포영장에 명시된 횡령·사기혐의를 우선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회장이 사업권을 딴 해운대 엘시티 개발사업은 당초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던 옛 한국콘도 부지까지 들어가면서 2조7000억원대 규모로 커진 프로젝트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로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