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개 중 최종 문서는 1∼2건 불과…정호성 "대통령 지시로 넘겨"
檢, 朴대통령 유출 지시 배경 조사 방침…추가문서 확인 안되면 崔처벌 어려울 듯

현 정부 '비선 실세'로 드러난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가 마치 공식 권한을 가진 결재권자처럼 청와대와 각 부처 업무 문서를 사전에 챙겨본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8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최씨의 태블릿PC 속 문서 50여건을 대상으로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 작업을 진행한 결과, 이 가운데 한두 건을 제외하고는 미완성본이거나 청와대 내부 전산망에 등록돼 문서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문서로 확인됐다.

앞서 JTBC가 입수해 검찰에 넘긴 이 태블릿PC에는 200여개의 파일이 있었지만, 검찰의 분석 결과 이 가운데 문서 파일은 50여개로 확인됐다.

검찰이 최씨에게 유출된 것으로 판단한 문건들에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 북한과 비밀 접촉 내용이 담긴 인수위 자료,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을 담은 외교부 문건, 국무회의 자료 등이 망라됐다.

검찰은 정부 각 부처와 청와대의 문서 작성자, 중간 결재자들 다수를 조사해 해당 문건들이 공식 결재 라인과 비공식 업무 협조 형식으로 부속실로 넘어와 정 전 비서관의 손을 거쳐 최씨 측에 넘어간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에 압수된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음성 녹음 파일에는 최씨가 구체적으로 정씨에게 문서들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음성 파일에는 문서 유출에 관한 대화 외에도 청와대 핵심 기밀인 수석비서관 회의 안건 등에 관한 대화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구속 상태인 정 전 비서관을 상대로 최씨의 국정 개입 관여 정도를 집중적으로 추궁 중이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이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토대로 문서 유출 경위를 추궁하자 박 대통령의 지시로 연설문을 비롯한 업무 문서들을 최씨 측에 전해줬다고 진술했다.

지시 배경·취지와 관련, 그는 박 대통령이 연설문 등과 관련해 국민 반응 등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의견을 구하는 차원에서 문서를 전해주라고 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1차 대국민 사과 때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며 최씨에게 자료를 보내주도록 한 사실을 부분적으로 시인한 바 있다.

검찰은 최씨가 받아본 문서들이 공식 문서번호가 붙은 최종본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가 아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만 적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한두 건의 최종 문서가 있지만, 이는 청와대 생산 문서가 아니라 정부 부처의 문서를 보고받은 것이라 법이 규정하는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태블릿PC 문건 유출은) 공무상 비밀누설에 관한 범죄로 대통령기록물법 적용이 어렵다"며 "(문서들이) 최종본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따라서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체포영장 청구 때는 혐의란에 공무상 비밀누설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을 적었으나 구속영장 청구 때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만 적용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최씨 측에 외교·안보 등 민감한 내용이 담긴 정부 문서를 다량으로 유출했다고 사실상 시인했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만큼 임기 중 기소 가능성과 관계없이 대통령을 상대로 최씨 측에 문서를 내주도록 한 경위와 의도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판례상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정보를 건넨 사람만 처벌하고 받은 사람은 처벌할 수 없게 돼 있어 최씨는 이와 관련한 별도의 처벌을 받지는 않을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누구나 공무상 비밀을 알고 싶어 하겠지만 공무원은 이것을 함부로 주면 안 되니 준 사람을 처벌하라는 것이 공무상 비밀누설죄 조항의 내용"이라고 밝혔다.

다만 향후 검찰의 수사에서 최씨 측이 태블릿PC 안에 든 문서 외에 추가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 청와대 생산 문건을 받아본 것으로 확인되면 최씨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적용돼 처벌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 전 비서관이 거의 매일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최씨에게 전달했고 최씨가 주도하는 '비선 모임'이 이를 검토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한지훈 기자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