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누수' 확인…檢, 정호성 누설한 어떤 비밀 조사하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 씨에게 청와대와 정부 부처 문건을 대량으로 넘긴 의혹을 받는다.

특히 최씨가 보관·사용한 것으로 검찰이 결론 내린 태블릿 PC에서는 국정 전반에 걸친 자료들이 다수 발견된다.

이 때문에 해당 기기에 담긴 유출 자료 중 어느 선까지 정 전 비서관이 누설한 것에 해당하는지가 수사 방향과 폭을 결정할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앞서 JTBC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자료는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이다.

태블릿 PC에서 발견된 대통령 연설문은 모두 44개다.

보도에 따르면 최씨가 연설문 파일들을 받아본 시각은 박 대통령이 실제 연설하기 전이었다.

현 정부의 통일 분야 국정철학이 가장 잘 녹아있다는, 이른바 '통일대박론'의 실천방안이 담긴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은 외부 공개 하루 전에 이미 최씨에게 전달됐다.

2013년 신년사와 같은 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역시 언론에 공개되기 하루 전에 최씨가 받아본 정황이 나타났다.

이 연설문에선 최씨가 받아본 이후 수정된 흔적도 있는데 최씨가 직접 수정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최씨가 받아본 청와대 관련 내용은 연설문만이 아니었다.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 자료 외에도 지방자치 관련 자료 역시 최씨에게 전달됐다.

2013년 7월 23일 오전 10시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한 발언을 최씨는 회의 시작 두 시간 전인 오전 8시 12분에 받아봤다.

하루 뒤인 24일 강원도청에서 받은 지방자치 업무보고 자료도 최씨는 전날인 23일 오전에 본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가 받아본 자료 중에는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작성된 자료도 있다.

대선 기간 유세문을 비롯해 대선 당선 소감문, TV토론 자료, 대선 광고 동영상까지 선거 준비에 필요한 중요 자료들이 대선 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맡지 않았던 최씨의 손안에 들어간 셈이다.

최씨가 받아본 문건 중 가장 문제가 될만한 자료는 민감한 대북·외교 관련 기밀이다.

2012년 12월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독대하기 전 작성돼 최씨가 받아본 일종의 '회동 시나리오'에는 남북 간 어떤 접촉이 있었는지 묻는 부분에 당시 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세 차례 비밀접촉을 했다는 정보가 적혀 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정권 차원의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민감한 정보다.

2013년 1월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 연맹 간사 등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보낸 특사단 접견을 앞두고는 '일본 측에 먼저 독도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작성됐는데 이 역시 접견 전에 최씨가 봤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해 여름 경호상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박 대통령의 휴가 사진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 태블릿 PC에 전달된 걸로 전해져 최씨는 대통령의 공식업무 외에 다른 분야까지 챙겼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물론 이 모든 자료를 정 전 비서관이 유출했는지 확신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한 최측근 '문고리 권력'으로 불렸다.

그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주로 연설문 작성과 정무 기획 쪽 업무를 맡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그가 일한 청와대 부속실은 각 수석실과 여러 정부 부처에서 작성한 모든 정책 자료가 모이는 곳이다.

이 때문에 태블릿 PC에 담긴 자료와 그 유출 사실을 그가 몰랐을 리는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거의 매일 대통령 보고자료를 전달받은 최씨가 '비선모임'에서 이를 검토했다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최씨는 태블릿 PC 외에도 다른 경로로 정부와 청와대 자료를 접한 셈이다.

이 경우 빼돌려진 중요 기밀 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그 수량이 더 많아질 수도 있어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kj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