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고위험군 학생 상담·치료에 친권 제한 필요"

중학교 2학년 박재현(14·가명)군은 지난해 학교에서 실시한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자살 생각이 위험 수준으로 나왔다.

평소 학교생활에 심하게 부적응하고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박군의 안전을 우려한 학교 측은 부모에게 외부 전문기관을 안내하고 서둘러 상담을 받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박군 부모는 "아들이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고등학교 2학년 최소연(17·가명)양도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혼한 부모가 딸의 상담·치료에 대해 "신경 쓰기 귀찮다"며 반대해 전문기관과 연계한 치료는 이뤄지지 못했다.

박군이나 최양처럼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사전에 발견해 치유하려는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석된 학생은 매년 전국적으로 1만명에 육박한다.

이 검사는 해마다 1학기에 초등학교 1·4학년과 중·고등학생 1학년을 대상으로 온라인·서면 검사 방식으로 이뤄진다.

올해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를 받은 초·중·고생 191만8천278명 중 3.2%인 6만558명이 '관심군'으로 분류됐다.

자살 생각이 중증도의 위험 수준으로 평가된 학생도 9천624명으로, 지난해 8천613명보다 1천11명 증가했다.

일선 교육청과 학교는 이들 학생에 대해 지속적인 관리와 전문기관에 검사 의뢰 등 2차 조치에 착수하지만 친권자인 부모가 거부하면 강요할 수 없어 이차적 사회안전망이 작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교사는 "실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학생조차도 부모는 전문상담기관과 병원에 자녀를 보내는 것에 반대해 막막했다"면서 "학교는 물론 교육청까지 나서 부모에게 사정해 가까스로 학교 밖 전문가와 연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 중 30%는 학부모 거부(67.5%)나 학교 수업 시간에 전문기관을 방문해 상담을 받는 것을 꺼리는 출결 문제(32.5%) 등으로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친권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전문기관의 즉각 조치가 필요한 자살 고위험군 학생에 한해 부모가 뚜렷한 사유 없이 자녀의 상담·치료를 거부할 수 없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학교보건법, 초중등교육법 등 관계 법령에 이를 명시해 어린 학생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한 안타까운 희생을 최대한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자살 고위험군을 비롯한 관심군 학생에게는 교육 당국이 상담과 치료비를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울불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분노조절장애, 자살위험 등에 대해 한계가 뚜렷한 교내 관리체계뿐만 아니라 외부 전문기관과 연계한 2차 검사와 치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인천시교육청 권상순 장학사는 3일 "아이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고위험군 학생들이 부모의 거부나 가정 불안 등의 문제로 지원받을 기회 자체를 놓치면 안 된다"면서 "아이들이 제때에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게 법률·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천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s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