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정부 "수용 노인 의료 근접성 개선" 병원 "안전성·유효성 검증 안돼"
요양시설 680곳 중 150여곳만 신청…"화상대화 진료 효과 있겠나" 시큰둥

제19대 국회 때 의료법 개정안이 폐기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원격의료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가 전국의 대형 노인요양시설을 대상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정부는 입소자들의 건강을 상시 관리해야 한다며 사업 추진을 강행할 태세다.

반면 병원들은 안전성 미확보를 이유로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당국의 요구에 일부 요양시설이 마지못해 원격의료 신청서를 냈지만 병원들의 반발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부터 내년 10월까지 '요양시설 건강관리 강화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상 시설은 간호사가 배치된 입소자 70명 이상 노인요양시설 680곳이다.

지난 8월 지방자치단체, 이달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나서서 수요 조사를 했으나 참여 의사를 밝힌 요양시설은 많지 않다.

12개 시·도 150여 곳이 전부다.

울산·세종시와 경기·전남·전북은 신청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광주가 44곳으로 가장 많고 서울 24곳, 경북 23곳, 부산 20곳, 대구 12곳, 충북 11곳이다.

대전은 2곳에 그쳤고 강원·경남·제주는 3곳, 인천·충남은 5곳에 불과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신청서를 낸 요양시설에 PC·모니터 등 원격의료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장비와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생체정보 측정용 장비를 제공할 계획이다.

장비는 공단이 일괄 구매한 후 보증금 10%(48만원)만 받고 제공할 계획이다.

올해는 한시적으로 무상 대여하는 방식도 검토중이다.

정부는 규모가 큰 요양시설에 촉탁의가 지정돼 있지만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거동 불편 입소 노인들에게 원격의료가 진료 접근성을 높여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원격의료 추진을 중단하는 게 맞다"며 원격의료 반대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

전국의 각 병원도 국민 건강 증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원격의료에 반대하고 있다.

광주시의사회의 유병전 공보이사는 "의료는 대면 진료가 우선"이라며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들은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해 화면상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대구의 한 병원 원장도 "진단의 기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진 외에 촉진, 시진, 청진, 타진이 기본인데 만성질환을 원격의료 시스템으로 진료하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원격의료를 신청한 요양시설들 역시 썩 내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충북도가 지난 8월 20여명의 시설 운영자를 초청, 간담회를 했을 당시 처방전을 받기 편한 장점이 있겠다고 평가하면서도 의료 사고 발생 때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가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당뇨나 고혈압 등 단순 질환을 제외한 질환도 원격 진료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못미더워했다.

광주 요양병원의 한 관계자도 "원격의료를 도입한다고 해서 노인 의료수준이 개선되겠느냐"며 "촉탁의가 성심껏 환자를 돌봐주는 게 좋다"고 선을 그었다.

인천시의 한 공무원은 원격의료 신청이 저조한 데 대해 "인근 병원을 이용하는 게 좋으면 좋았지, 화면을 보면서 의사와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처방을 받는 걸 어르신들이 진료라고 여기겠느냐"고 반문했다.

노인요양시설 일부가 원격의료를 신청했지만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의사협회는 물론 각 병원이 원격진료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요양시설의 신청만으로 원격의료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요양시설은 요양 수가를 지급하는 건강보험공단과는 '갑을' 관계이다.

불이익을 우려해 등 떠밀리다시피 신청서를 낸 요양시설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충북의 한 요양시설은 촉탁의와 상의 후 원격의료 신청서를 냈다고 주장했으나 해당 촉탁의는 "협의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격의료를 반대한다"고 잘라 말했다.

원격의료를 확대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와 무분별한 원격의료가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키우는 병원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중간에 있는 요양시설만 새우 등 터지는 처지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종구, 김동규, 박창수, 변지철, 심규석, 이승형, 이재림, 임보연, 장덕종, 황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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