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정신병원 무더기 기소…"의료현장 모르는 과도한 처사"

#1. 경기도에 있는 한 정신병원은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퇴원명령을 통지받고 보호자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A씨는 병원과 거리가 떨어진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 당장 환자를 데리러 올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병원은 퇴원날짜를 A씨가 내원할 수 있는 이틀 뒤인 주말로 미뤘고 이날 환자는 보호자와 함께 퇴원했다.

이로부터 수개월 뒤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는 퇴원명령 불이행 및 불법감금 혐의로 검찰에 약식기소됐다.

최근 수사당국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서류가 미비하거나 퇴원명령을 통보받고도 이를 즉시 시행하지 않은 경우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의료계가 혼란에 빠졌다.

30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의정부지검은 정신보건법과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기 북부지역 정신병원 16곳의 원장과 대표, 의사 등 53명을 기소했다.

비정상적인 입·퇴원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게 검찰의 목적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과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자발적 입원이 아닌) 보호의무자에 의해 입원한 환자를 6개월 이상 입원시켜야 하는 경우 해당 지자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심사에서 퇴원 부적격 판정이 나오면 입원을 유지하고 6개월 뒤 재심사를 거치지만, 퇴원이 결정되면 해당 병원은 환자를 즉시 내보내야 한다.

문제는 대다수의 환자는 퇴원 시 보호자가 필요한 데 현실적으로 보호자가 병원을 방문해 퇴원절차를 밟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박종익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보호자가 거주하는 근처에 병원이 있지 않은 이상 6개월가량 입원해 있던 환자를 갑자기 데려갈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그렇다고 환자가 혼자 퇴원할 정도로 정신상태가 양호한 경우도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그동안 보건당국 역시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퇴원명령이 있더라도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 상황을 고려해 퇴원날짜를 조정하게 했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2. 또 다른 정신병원은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퇴원명령을 통지받고 보호자 B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B씨는 직장 일 때문에 환자를 당일 데려갈 수 없다고 했지만, 정신보건법상 퇴원을 다음날로 미룰 수는 없었다.

결국, B씨는 자신의 업무를 중단하고 병원을 방문해 오후 9시에 환자를 데려갔다.

이 과정에서 B씨는 병원 직원에게 욕설과 험담을 하고 담당 보건소에도 전화해 "죽이겠다"며 위협을 가했다.

다음날 보건소 직원은 법령에 '즉시'라고 기재돼 있지만, 병원이 융통성을 발휘해 일주일 이내로 환자를 퇴원시키면 된다고 교육했다.

또 전문가들은 응급환자를 보호의무자에 의해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를 입원 당일 구비해야 한다는 수사당국의 해석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는 환자와 보호의무자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가족증명서 등이 필요하지만, 정신보건법상에도 서류구비 시점에 대해 명시된 조항이 없다는 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등의 주장이다.

또 보호의무자의 입장에서는 구비서류를 미리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의 영세한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는 생업에 바쁘고 법절차에 대한 인식 미비로 이를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3. 9년 전 조현병을 진단받고 4차례 입원치료를 받은 30대 남성 C씨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환청과 피해망상이 악화하는 증상을 보였다.

특히 음주 후에는 지나가던 행인을 폭행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음식에 독을 타서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어머니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고 가족들은 C씨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러나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C씨가 거부해 가족들은 두려움에 떨며 다시 C씨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보호의무자 동의입원을 시행하려 했지만, 이날은 주말이라 주변의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인터넷발급, 무인발급기 등을 이용한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서류구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박종익 이사는 "정신질환 증상은 24시간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악화와 개선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예측불가능하게 찾아올 수 있다"며 "의료현장의 의사들은 응급상황에서 보호자의 신분이 확인되면 환자와 그 주변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이틀 내로 서류를 구비할 것을 공지하고 입원을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의사들에게 환자와 보호자가 처한 상황은 무시한 채 법적 잣대만을 따르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퇴원명령이 떨어지면 보호자가 없어도 환자를 병원 밖으로 내쫓고, 자해나 타해 위험이 눈에 보이는 데도 서류가 없으면 치료하지 말라는 꼴"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ae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