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면 이른 송년회가 시작되는 시기인데 올해는 아직까지 예약이 한 건도 없습니다.” 지난 27일 저녁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있는 한 한우전문식당. 직장인과 구청 공무원들이 주로 찾던 이곳 테이블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이모 사장은 “김영란법 시행 전만 해도 하루 400만원에 달하던 매출이 지금은 250만원 안팎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빈 예약장부를 꺼내 보였다. 그는 “하루에 많아야 3~4통의 예약 문의 전화가 오는데 가격대를 물어본 뒤 그냥 전화를 끊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밥보다 김영란법…외식업 매출 한달새 25% '뚝'
“식당 예약 거의 사라졌어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식당가에 찬바람이 부는 곳이 많다. 28일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지난 한 달간 외식업 전체 매출이 24.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 측이 지난 24일부터 4일간 전국 419개(응답 기준)의 외식업체를 표본 조사한 결과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었다고 응답한 식당주는 전체의 68.5%에 달했다. 법 시행 전 조사에서 전체 식당의 37%만 매출 감소를 겪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에 비해 훨씬 영향이 컸다.

이 사장은 “단체 예약은 거의 사라졌고, 예약을 하지 않고 오는 손님 중에는 1인당 1인분씩만 먹고 나가는 손님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상황이 지속되면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며 “주변 식당 사장들과 함께 10월 한 달간의 매출 전표를 들고 국민권익위원회나 국회에 찾아가 법 조항을 고쳐달라고 시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만9000원 영란세트도 소용없네요”

매출이 가장 많이 줄어든 업종은 일식당과 육류구이집이었다. 일식당은 46.3%, 육류구이집은 28% 매출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회와 한우 등 원재료 가격이 높아 메뉴 가격을 탄력적으로 정하지 못하는 업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여의도의 한 유명 일식당은 저녁 식사 인원이 하루 평균 두 팀으로 급감했다. 이 식당 사장은 “하루 450만원이 넘던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며 “들어오는 손님마다 ‘1인당 3만원에 맞춰달라’고 말해 곤란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메뉴 단가가 낮은 일반한식 업체들은 김영란법으로 인한 타격이 크지 않았다. 일반한식 식당주들은 응답자의 절반이 김영란법에 따른 매출 감소가 없다고 밝혔다. 연구원이 추정한 전체 일반한식 시장의 매출 감소율도 13.8%에 불과했다.

휴·폐업 고려하는 업소 급증

1인당 단가 또한 낮아졌다. 1인당 3만원 이상 금액을 소비하는 고객 비중은 39.7%에서 27.1%로 줄어들었다. 각자 식사 금액을 내는 더치페이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식당주의 50.4%가 더치페이 고객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외식업소들은 메뉴와 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 여의도의 한정식집 대방골은 굴비와 주류를 포함한 2만9000원짜리 메뉴를 새로 내놨다. 식당을 운영하는 박정아 씨는 “법 기준에 맞춘 메뉴를 내놓은 뒤 손님이 그나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의 조사에 응답한 식당주 중 메뉴를 조정했거나 조정할 계획이 있는 곳은 32%였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 감소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안에 휴·폐업(13.4%) 또는 업종 전환(16.0%)을 고려하는 업소들도 있었다. 서용희 외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넓어 모임과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일반 시민 사이에도 퍼지고 있다”며 “현 상태가 장기화되면 폐업업체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규/정지은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