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희롱하고·때리고…性추문 논란으로 얼룩진 문화예술계

김현 시인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자는 글을 기고하면서 촉발한 문단 내 성추문 논란이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소설가 박범신 씨가 성추문 구설에 올라 사과했고, 시인 박진성 씨는 시를 배우려는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또 서울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 함영준 씨는 지난 23일 미술계 여성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번에 불거진 성추문 논란의 양상은 유사하다.

관련 분야에서 '권력'을 쥔 남성이 이해관계에 있는 여성들에게 성희롱 또는 성추행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화예술계의 성추문은 심상찮게 일어났다.

◇ "사석에선 오빠라고 불러"…여단원 추행·소설가는 내연녀 폭행
전 전북 익산시립합창단 단무장 A(50)씨는 지난 8월 여성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성폭력치료강의 80시간 수강과 사회봉사 200시간도 명령받았다.

A씨는 2013년부터 2년간 사무실, 승용차, 커피숍 등에서 허벅지와 귓불 등을 만지는 등 단원 6명을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A씨는 단무장 직에서 해촉됐다.

그는 여성 단원들에게 "사석에선 오빠라고 부르라"면서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갑을관계를 악용한 전형적인 사례다.

50대 중견 소설가 B씨는 지난 6월 내연녀를 때리고 승용차에 감금하려 한 혐의(특수상해 등)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지난해 11월 말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내연녀를 깨워 "너 같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신에게 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신 대신 벌을 주겠다"라며 주먹과 발, 등산용 스틱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내연녀의 직장까지 찾아가 "여기서 죽고 싶냐"며 뺨을 때리고 승용차에 감금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았다.

피해자는 전치 10주의 상처를 입었다.

B씨는 소설 수업 중 피해자를 만났고 내연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의심해 '치정 폭행'을 했다.

1990년대에 등단한 B씨는 국내 유수의 각종 문학상을 받았고 중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침묵의 카르텔' 알고도 '쉬쉬'…"性인식, 대중 눈높이에 맞게 변해야"
잇따르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문제는 갑을관계에 따른 폐쇄성과 윤리 의식 부족이 빚어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문화예술계 내 '침묵의 카르텔'은 공고해 곪은 상처를 도려내지 못하고 있다.

익산시립합창단 단무장의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덮였을 문제였다.

소설과 시를 배우거나 예술을 배우는 예비 문화예술인들도 자신의 미래 때문에 '침묵의 카르텔'에 동참한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문화집단에 반기를 들면 향후 등단이나 입상에서 배제돼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다.

성 관련 문제를 예술 행위의 하나로 합리화하는 문화예술계의 내부 분위기도 병폐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 여류 시인은 "문단 인사들이 술자리에서 종종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을 하거나 원치 않은 신체적 접촉을 하기도 한다"며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오랜 병폐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던 시한폭탄이 폭발했을 뿐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원도연 원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예술가들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잣대가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특별하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 속에 나타나는 문제점도 있겠지만, 예술가들의 부족한 윤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깰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몇몇 예술가들의 기행 또는 개성들로 치부됐던 것들은 사회적인 윤리로 들어와야 한다"며 "예술가들과 대중의 소통이 이제 수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수평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윤걸 예원예술대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도 이번 성추문 논란을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문단 내 구습과 규범이 변화하는 세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태"라고 규정했다.

그는 "문단을 비롯한 문화예술계가 잠수함의 토끼처럼 민감하게 시대 변화를 감지하고 성인식만큼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sollens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