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둘러싸인 청송군 청송읍 전경
산으로 둘러싸인 청송군 청송읍 전경
외지인들이 경북 청송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청송감호소다. 1983년 당시 신군부는 사회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워 정해진 형기를 채운 수용자들을 일정 기간 사회에서 격리하기 위해 청송군 진보면에 감호소를 지었다. 1990년 청송감호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이 개봉되면서 ‘청송=범죄자 수용소’라는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불편함 탓에 주민들마저 잇따라 떠나면서 1960년대 8만5000여명이던 청송 인구는 2000년대 중반 2만명대로 떨어졌다.

청송이 관광과 힐링을 겸한 휴양관광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해마다 관광객 200만명이 몰리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중반부터다. 청송감호소에 가려졌던 주왕산과 주산지 등 빼어난 자연경관이 부각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푸른 소나무(靑松)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송의 수려한 자연경관은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은 자신의 저서 《택리지》에 “청송의 주왕산은 골이 모두 돌로 이뤄져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도 지극히 아름답다”고 썼다.

문제는 주왕산과 주산지 등 지역 내 명승지를 찾는 사람은 늘었지만 청송이라는 도시 브랜드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은 주왕산과 주산지를 둘러본 뒤 숙박을 위해 안동과 영덕 등 인근 시·군으로 빠져나갔다. 청송이 보유한 자연경관의 혜택은 정작 다른 시·군이 봤다.

한동수 청송군수
한동수 청송군수
2007년 취임한 한동수 청송군수는 ‘육지 속 섬’으로 불릴 정도로 교통 오지인 청송군의 지리적 불리함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역발상을 했다. 대구시에서 28년간 공직에 종사한 한 군수는 취임 직후 청송을 ‘도시민들에게 느린 삶의 여유를 선사하는 힐링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군청을 비롯한 행정기관이 밀집한 청송읍에선 지금도 한낮에 거리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떠들썩한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청송의 최고 번화가인 청송읍 인구는 지난 6월 기준으로 5500여명 남짓이다. 읍에서 1㎞만 나가도 산과 계곡이 나타난다. 청송군이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선정하는 ‘슬로시티(slow city)’에 뽑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편한 교통 탓에 기업들의 외면을 받아 굴뚝 하나 없이 잘 보전된 자연자원도 강점이 됐다.

[대한민국 도시 이야기-청송] "굴뚝 없이 우뚝 서자"…교통 오지를 '산악스포츠 메카'로 바꾼 청송
전체 면적의 80% 이상을 산이 차지하는 지형 조건은 청송을 산악스포츠의 메카로 떠오르게 했다. 청송군은 2011년부터 매년 겨울 부동면 내룡리 얼음골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열고 있다. 세계 20여개국의 클라이머(전문산악인)들이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청송을 찾는다. 산악자전거대회와 산악마라톤대회, 전국패러글라이딩대회 등도 잇따라 열고 있다.

청송군이 세계적인 힐링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또 다른 분야는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다. 청송엔 국제회의를 열 대형 컨벤션센터가 없다. 마이스산업을 위해서는 컨벤션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깨겠다는 게 청송군의 설명이다. 마이스 중에서 청송군이 주력하는 분야는 ‘기업회의’와 ‘포상관광’이다. 빼어난 자연환경을 앞세워 문화시설 및 농촌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청송군은 2013년 주왕산 근처에 대규모 한옥 펜션인 민예촌을 조성했다. 여기에 국내 1위 리조트기업인 대명그룹이 내년 말까지 주왕산 인근에 객실 314개를 갖춘 콘도와 스파, 체험농장 등의 시설이 들어서는 청송대명리조트를 지을 계획이다. 한 군수는 “풍부한 자연환경에 더해 대규모 숙박시설까지 갖춰지면 조만간 연간 관광객 300만명 시대로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송=강경민/오경묵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