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들고 자해소동, 결국 찬반투표 없이 집회 해산

"지도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하면 안 되잖아. 찬반투표해야지."
19일 오후 1시 30분 화물연대 조합원 총회가 열린 부산항 신항 집회현장.
이광재 화물연대 수석부본부장이 "투쟁은 오늘로 정리한다"며 지난 열흘 동안 지속한 파업 종료를 선언하자 조합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조합원들은 "지도부가 조합원의 의사도 묻지 않고 파업 종료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며 집회장 앞으로 몰려와 지도부를 둘러싸고 성토했다.

전 조직국장 출신 조합원 천모씨는 흉기를 든 채 집회방송차에 올라가 "파업 종료 여부를 찬반투표에 부쳐라"며 10분간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조합원의 질타에 지도부가 집회장을 잠시 떠나자 흥분을 가라앉힌 천씨가 집회를 주도했다.

천씨는 "지도부의 설명이 미흡해 협상안을 이해하지 못한 조합원이 많고, 방송장비가 좋지 않아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아예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서 "지도부의 충분한 설명이 다시 한 번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약 1시간만 집회장으로 복귀한 지도부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이번 파업의 성과와 정부의 협상안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했다.

화물연대 울산지부장은 "미진한 결과물을 발표하려니 조합원 동지에게 죄송스럽다"면서 "하지만 성과가 없는 협상은 아니었고, 정부가 분명 한발 물러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화물차 안전운행 확보를 위해 과적 단속을 강화하고, 지입차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화물연대에 약속했다.

울산지부장은 "그동안 화물기사들이 운송사와 6년간의 위수탁계약이 끝나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 당하고, 임차한 차량 번호판을 빼앗겨 눈물짓는 일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번 합의안은 운송사가 6년이 지나도 '화물기사의 귀책사유가 없는 한' 재계약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성과는 분명히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화물기사의 귀책사유는 관련법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열거돼 있어서 사업자가 이 문구를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점도 힘주어 말했다.

지도부의 상세한 설명 뒤 조합원 질의·응답도 진행되자 반발 분위기는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자해소동을 벌인 천 전 국장도 "찬반투표를 하자"던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면서 사태는 3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화물연대 파업 열흘 동안 부산항을 비롯해 전국의 항만에 물류차질은 크지 않은 것으로 국토부는 조사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운송거부 시작 전 사전 수송물량이 많았던데다 대체운송수단을 잘 활용해 피해액을 따로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류차질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화물연대 파업 열흘 동안 박원호 화물연대 본부장을 비롯해 모두 86명의 조합원을 불법시위, 교통방해,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연행해 조사했다.

집회과정에서 수차례 충돌이 발생하며 경찰 28명이 날아드는 돌에 맞아 다치거나 넘어져 상처를 입기도 했다.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rea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