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 주변 식당 "공무원들 안나와 장사 안된다" 하소연

"공무원들이 움직이질 않는데 장사가 되겠어요? 하루하루가 정말 죽을 맛입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청탁금지법)' 이 시행된 지 20일이 지난 18일 경기도 수원시청 주변의 식당가는 한산했다.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공무원들이 법시행 초창기에 괜히 꼬투리를 잡히거나 오해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한껏 몸을 낮추면서 공무원을 상대로 했던 식당들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접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청탁금지법의 취지와 달리 공무원들이 '관계 불통법'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시청 주변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께 점심시간을 앞두고 찾아간 수원시청 주변의 한 한정식집은 축 처진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청탁금지법 식사 가액인 3만 원이 넘는 정식이 나오는 이 식당은 법 시행 전에는 점심시간에도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청탁금지법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식당이 됐다.

"정말로 법의 영향이 크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식당 관계자는 "보세요, 예약이 한 건도 없잖아요"라며 예약 장부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는 "10월 들어 정말로 일반인만 몇 명 찾아오지 공무원들이 하던 회식이 싹 없어졌다"면서 "우리 같은 큰 식당이 어제 100만 원도 못 팔았다.

못 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또 인근의 한 참치 집도 점심 정식 2만 원을 내걸었지만, 법 시행 이전과는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고급 식당의 매출이 줄어든 대신 1만 원 이하 가격대 음식점이 북적거린다고 하지만, 수원시청 주변은 사정이 달랐다.

7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파는 한 식당은 이 지역에서는 손님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반사이익을 보지 못했다.

이 식당 주인은 "법 시행 이후 1주일 동안은 시청 공무원들이 나오지 않아서 정말 힘들었다"면서 "그나마 지금은 예전의 수준 정도로 회복됐지만, 고급 식당에 가던 손님이 우리 집으로 오는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비교적 한산한 시청 주변 식당가와는 달리 이날 수원시청 구내식당은 공무원들로 붐볐다.

11시 40분 배식 전에 이미 수십 명의 공무원이 줄을 서 있다가 배식이 시작되자 우르르 들어가 한 끼에 2천500원짜리 식사를 했다.

배식 시작 20여 분 만에 이미 식당 이용자 수는 270명을 넘어섰다.

이날 점심시간에만 380명이 구내식당을 이용했다.

식당 관계자는 "시청 구내식당은 기간제 공무원과 청원경찰, 일반 시민들까지 이용하는 곳"이라면서 "계절별, 요일별로 식당 이용자 수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공무원이 구내식당에만 있다는 비난을 애써 변명했다.

수원시청 구내식당의 이용자 수는 법시행 이전과 비교하면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올 5월부터 법 시행 하루 전인 9월 27일까지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406.5명이었으나 9월 28일부터 10월 14일까지 425.1명으로 18.6명이 늘었다.

특히 법시행 이후 10월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일인 지난 4일과 이튿날인 5일에는 507명과 534명을 기록할 정도로 구내식당이 붐볐다.

수원시는 "법 시행 이후 구내식당 이용 공무원이 조금 늘긴 했지만, 획기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 "한 두세 달 지나봐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업체에 구내식당 운영을 맡긴 이천시도 법 시행 이전보다 하루평균 30명이 증가한 260∼270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천시의 한 공무원은 "법 시행 이후에 이천 시내로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대신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무래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일반 식당에는 미안하지만 당분간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천 시내에 있는 한 유명 고깃집은 "법이 시행되고 나서 공무원과 기업체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면서 "그렇다고 고깃값을 싸게 받을 수도 없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여주시는 법 시행 이전보다 구내식당 하루평균 이용자가 8명 증가할 정도로 변화가 거의 없다.

여주시는 이미 2013년부터 지역 상권 살리기를 위해 한 달에 두 번 시행하고 있는 '구내식당 문 닫기 운동'의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용인시도 구내식당 이용자가 법 시행 이전보다 하루 평균 60∼100명이 늘면서 그만큼 시청 주변 식당을 찾는 공무원의 발길은 줄어들었다.

대신 용인시는 매주 금요일 하루를 외식의 날로 정하고 구내식당 점심을 600명분에서 300명분으로 줄여 외식을 권장하고 있다.

수원시도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매출에 타격을 받는 주변 식당 상인을 위해 주 1회 또는 격주 1회씩 구내식당을 휴무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hedgeho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