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시간 아니라 그냥 돌아와"…영유아 학대예방 '한계'

생후 2개월 만에 부모의 방치 속에 심한 영양실조 상태로 숨진 인천 영아는 사망 이틀 전 국가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에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 당시 몸무게가 1.98㎏으로 뼈만 앙상해 누가 봐도 학대가 의심되는 모습을 한 이 아기는 사회 안전망에 구조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채 집에서 숨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1일 인천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25)씨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아내 B(21)씨는 8월 초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은 뒤 2개월이 지난 10월 9일 오전 숨질 때까지 한번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A씨 부부는 딸이 분유를 제대로 먹지 못해 또래 평균 몸무게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시름시름 앓는데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애초 양가 부모의 동의 없이 어린 나이에 결혼 생활을 시작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에는 일정한 직업 없이 2천여만원의 빚을 졌고, 월세 52만원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살았다.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영유아 예방접종도 하지 않던 A씨는 딸이 숨지기 이틀 전인 지난 7일 정오께 계속 미뤄온 결핵(BCG) 무료 예방접종을 위해 관할 보건소를 찾았다.

그러나 해당 보건소는 매주 수·목·금요일 오전 9시∼11시 30분에만 BCG 예방접종을 하는 탓에 아기는 주사를 맞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A씨는 경찰에서 "보건소에서 BCG 예방접종을 하러 오라고 해서 금요일인 7일 정오께 도착했는데 점심시간이어서 월요일날 다시 가기로 하고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A씨의 딸은 9일 오전 7시 40분께 집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끝내 사망했다.

A씨 부부는 딸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3시간 넘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다른 의료종사자와 마찬가지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보건소 직원들이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뼈만 앙상한 아기를 접했으면 전문기관 신고와 보호 조치를 기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해당 보건소 관계자는 "BCG 피내용(주사형) 백신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15명이 맞을 수 있는 한병을 개봉하면 4시간 안에 다 써야 한다"면서 "이 때문에 전주에 예약을 받아 매일 15∼16명만 접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신생아가 12세가 될 때까지 B형 간염, 결핵, 파상풍 등 총 15종의 무료 예방접종을 받도록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자녀를 학대·방치하는 부모가 이를 무시해도 강제할 권한은 없다.

일선 보건소의 한 관계자는 "아이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해도 한번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예방접종 이력이 없으면 정부 전산망인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에 등재조차 되지 않는다"면서 "이런 아이는 국가예방접종을 비롯한 기본적인 건강관리는 물론 입학 전까지 학대 피해 사실이 외부에 노출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인천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s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