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일식집들 매출 '반 토막'…자구책 마련 '비상'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서울 고급 식당만 피해를 볼 줄 알았는데…이 정도 일줄 몰랐습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하 법)으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지역 유명 일식집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식당에서는 '김영란법'에 맞춘 메뉴까지 내놨지만, 점심과 저녁 예약률이 50% 이하로 줄어드는 등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난 5일 만난 고양시 일산동구의 A 일식집 실장 임 모 씨는 김영란법 시행 후 점심과 저녁 식사 예약률을 묻는 말에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법 시행 전 평소 점심에 80여 명이 식당을 찾았는데 지금은 절반 수준인 하루 30∼40명으로 줄었다"면서 "법이 시행되면 서울 고급 식당들 위주로 피해를 볼 줄 알았는데, 이 정도 일줄 예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점심시간 늘 붐비던 주차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저녁예약률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직원 20여 명에 1층부터 3층까지 방 17개와 테이블 7개를 갖춘 이 식당은 법 시행 전 저녁예약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달 28일 이후 손님이 급격히 줄어 이달 초부터 3층은 운영을 아예 하지 않는다.

임 실장은 "지난달까지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병원 관계자, 건설 관계자 등의 저녁예약이 이어졌다"면서 "그러나 법이 시행된 이후 예약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가족 단위 저녁 손님들만 하루 6∼7팀이 찾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말부터 오전과 오후 직원 1명과 함께 김밥과 생수를 사 들고 매일 2시간 남짓 고양·파주 아파트 건설현장을 찾아 식당 홍보를 하고 있다"면서 "이마저도 현장 앞 경비원들의 제지로 홍보도 못 하고 되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골손님들에게 전화해 간혹 사무실에 들어가도 홍보도 못 하고 명함만 전해주는 상황"이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임 실장은 "단골들에게 식당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주는 못 할 상황"이라며 "직원들도 손님이 없어 다들 불안해하며 서로 눈치만 보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계속 이 수준으로 가면 외식 산업은 정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당장 2∼3개월은 버틴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손님이 찾질 않으면 직원들 감원은 불가피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근 B 일식집 대표 한 모 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일산동구에서 가장 번화가에 자리 잡은 이 일식집에는 9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 하루 평균 50여 명이 찾았는데 법 시행 후 요즘 절반도 안 되는 하루 20명 안팎의 손님이 찾는다"고 한 씨는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5일 오후 7시께 이 식당을 찾아보니 15개의 방 중 2곳에만 손님들이 식사할 뿐 텅 비어있었다.

이 식당은 지난달 법이 시행되면서 생선회와 초밥, 소주 한 병, 생선구이, 튀김, 매운탕으로 구성된 2만9천900원짜리 '김영란 메뉴'를 선보였다.

한 대표는 "가족 단위 손님이나 친목회 회원들이 간단하게 2차로 술을 마시러 와 이 메뉴를 찾기는 한다"며 "이 메뉴라도 많이 팔리면 좋을 텐데 워낙 손님이 줄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법 시행 초기라 단골들도 '한동안은 못 가겠다' '몸을 사려야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라며 "이 상태가 지속하면 앞으로 식당가는 물론 농수축산업에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관리해온 단골들에게 한달에 한 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가게 홍보를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일산동구 풍동에서 20년째 C 일식집을 운영하는 이 모 대표의 상황도 별반 차이가 없다.

지난달까지 15명의 직원을 뒀지만, 법 시행으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최근 2명의 직원이 퇴사했다.

이 대표는 "우리 식당은 병원 관계자와 건설업 등 전문 직종 근무자들이 찾아 세미나와 회의를 겸해 식사까지 했다"면서 "이달 들어 이런 예약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3일 연휴 기간 매출액이 지난달 주말 수준의 딱 절반"이라며 "법 취지는 좋게 생각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직원들부터 감원해야 하는 상황이 나올까 우려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격이 저렴한 메뉴가 그동안에도 있었다.

일선 식당에서 김영란 메뉴라고 선보이는 메뉴처럼 추가 메뉴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격이 낮아지면 그만큼 음식의 질도 낮아지고, 그 피해는 손님과 식당에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 4일 하루 15명의 손님이 가게를 찾았다"면서 "20년 동안 이곳에서 영업하면서 요즘처럼 손님이 없었던 적이 없었고, 당장 가게를 알리기 위한 광고를 준비해야 하는 건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고양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n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