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 화환 줄고, 식당 법인카드 사용액도 감소
란파라치 활동 늘자, 공직자들 "자나깨나 몸조심" 분위기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맞은 첫 주말은 김영란법이 바꿔 놓은 대한민국의 풍경을 실감하게 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였던 골프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다.

김영란법 시행 후 식당 법인카드 사용이 감소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장도 김영란법을 의식한 듯 소박해졌지만, '란파라치'로 불리는 전문 신고자들은 법 위반 사례를 찾아 곳곳을 누볐다.

◇ 확 줄어든 결혼식·장례식 화환…골프장 부킹도 감소
공직자를 비롯해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 본인과 가족의 결혼, 장례 등 경조사에 진열된 화환 수는 크게 줄었다.

하객과 조문객 수도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2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의 결혼식장에서 열린 검찰 직원 가족의 예식에는 축하 화환이 4개뿐이었다.

한 예식장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화환 수가 절반은 줄어든 것 같다"며 "5만원이 넘는 화환을 주고받는 게 주는 쪽, 받는 쪽 모두 문제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미리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머무는 시간도 짧아졌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것을 우려해 조의금만 전달하고, 상주와 인사만 한 채 장례식장을 떠나는 모습이 상당수 보였다.

골프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주말을 맞은 경기 남부 주요 골프장은 가을 성수기임에도 대부분 예약률이 100%에 못 미쳤다.

골프장 관계자는 "이맘때면 회원제는 부킹이 다 되거나 못해도 160팀은 넘겨야 하고 퍼블릭은 상대적으로 유동적이지만 절반도 예약이 안 돼 확실히 많이 빠졌다"며 "김영란법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 병원 청탁도 뚝…가격 저렴한 음식점 호황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환자 청탁이나 의료진에게 주는 감사 선물이 금지되는 등 병원에서도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변화가 읽힌다.

주요 대학병원들에서는 수술, 외래진료, 검사 등의 일정을 조정해주거나 입원실 자리를 마련해주는 청탁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유명 대학병원 관계자는 "하루에도 환자 진료와 관련한 청탁이 3∼4건씩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한 건도 없었다"며 "개인적으로 환자 청탁을 받은 직원들도 스스로 청탁을 거절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등은 내부에 '김영란법을 적용받는 기관으로서 환자나 가족으로부터 제공되는 감사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의 게시글도 붙여 두었다.

한정식집이나 횟집 등 고급 식당이 김영란법 시행의 직격탄을 맞은 것과 반대로, 저렴한 음식을 파는 음식점은 호황을 누리는 모습이다.

'일단 조심하자'는 분위기도 있거니와, 가격이 싼 음식을 먹어야 괜한 오해도 피할 수 있고 음식값을 나눠내는 데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 김영란법 시행 후 줄어든 식당 법인카드 사용액
고급 식당들의 고충은 통계로도 증명됐다.

3일 BC카드의 빅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직후인 지난달 28∼29일과 시행 4주 전 같은 요일인 지난 8월 31일∼9월 1일을 비교한 결과 요식업종에서 법인카드 이용액은 8.9% 감소했다.

반면 개인카드는 같은 기간 3.4% 감소하는 데 그쳤다.

요식업종 중에서는 한정식집에서 법인카드 사용액이 17.9%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중국음식점이 15.6% 줄어 그 뒤를 이었다.

법인카드 결제 건당 이용액은 요식업종은 5만5천994원에서 5만1천891원으로 7.3% 감소했다.

주점업종도 15만6천13원에서 15만923원으로 3.3% 줄었다.

◇ 대학교, 축제 앞둔 지자체 등은 김영란법 유탄 맞아
김영란법 시행으로 그동안 대학이 시행해 온 입학설명회나 교사 간담회, 세미나 등 학생 유치 활동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입시설명회뿐 아니라 고등학교 진학담당 교사 등을 찾아다니며 음식 대접을 하거나 기념품 등을 관행적으로 제공했는데, 이제는 법에 저촉될까 봐 눈치를 살펴야 한다.

대학은 조기에 취업한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는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는다.

그동안 관행대로 취업에 성공한 졸업예정자가 자신이 수강하는 과목의 교수에게 남은 수업의 출석을 인정해 달라고 하면 '부정청탁'이 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공직자이지만, 일부 사기업 임원은 지자체 출자·출연기관의 이사직 사퇴서를 제출하는 등 유탄을 맞은 곳도 있다.

사기업 임원도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으로 활동하면 '공무수행사인'에 해당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지자체들이 기획하는 축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1일 강원도 홍천에서 개막한 인삼·한우 명품축제에는 초청 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식사가 한우에서 국밥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개막식 초청 참가자에게 한우를 제공했지만, 김영란법에 저촉될 가능성을 없애고자 메뉴를 바꾼 것이다.

주요 대형 행사에서 제공되던 입장권·초대권 등 고액의 티켓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이 불편하다며 수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영란법 위반 있을 만한 곳에 출동한 '란파라치'
'란파라치'라 불리는 김영란법 전문 신고자들은 '먹잇감'을 찾아 활발히 움직였다.

연휴를 맞아 결혼식이 많은 데다, 장례식장에는 문상 온 조문객들이 몰려 경조사비와 관련한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다른 때보다 크다는 판단에서다.

'란파라치' 양성 학원을 운영 중인 문성옥(70) 공익신고총괄본부 대표는 3일 "그제 저녁에는 장례식장, 어제는 결혼식장 여러 곳을 다녔고, 오늘은 골프장과 룸살롱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몰래카메라'를 들고 1일과 2일 현장을 다니면서 김영란법 위반 사례를 찾아다닌 결과 서너 건의 의심스러운 현장이 확인됐다.

'란파라치'들은 금품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인적 사항과 이들의 관계를 100% 파악해 법규 위반이 확인되면 신고한다.

김영란법 위반 사례를 신고하면 꽤 많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신고에 따라 부정하게 오간 금품이 국고에 환수되면 액수에 비례해 최대 30억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국고에 환수되지 않으면 2억원 이하의 포상금을 받는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란파라치 양성 학원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문 대표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수강한 학생만 한 달에 500명씩 두 달 사이 1천명에 달했다.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kj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