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조정·중재 개시율 31%로 가장 낮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분쟁조정 개시율이 4년째 40%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측이 동의해야 분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제도상 맹점 때문에 해마다 의료사고 1천여 건이 조사도 받지 못한 채 묻힌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월 시행되는 일명 '신해철법'이 효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새누리당)이 의료중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6년 8월말까지 4년여 간 중재원에 접수된 중재·조정 신청 6천744건 중에서 조정이 개시된 경우는 2천900건(43%)에 그쳤다.

나머지 57%는 병원 측의 불참(3천718건) 등으로 조정·중재가 시작도 되지 못했다.

2012년 의료중재원 설립 이후 조정·중재 신청 건수는 503건(2012)에서 1천691건(2015)으로 3배 이상 늘었지만, 연간 중재율이 50%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병원 종류별로 보면 상급종합병원의 조정·중재 개시율이 31%로 가장 낮았다.

종합병원급의 조정·중재 개시율은 36.8%로 역시 평균(43%)을 밑돌았다.

병원(52.1%), 의원(44.8%), 치과병원(44.7%), 치과의원(57%), 한방병원(63.6%), 한의원(53.5%) 등은 비교적 개시율이 높았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비를 가리는 의료 소송은 소송 기간이 길고 비용도 비싸다.

특히 전문 지식을 갖춘 의료인의 과실을 환자가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승소율도 매우 낮다.

'의료사고 분쟁조정제도'는 환자나 의료진 모두 기나긴 의료 소송으로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지 말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면 전문적인 위원들의 검토를 받아 최대 수개월 내에 훨씬 적은 비용으로 조정 절차를 마칠 수 있다.

조정의 효력은 법원의 판결과 같다.

단 조정 절차에 들어가려면 의료사고의 '피신청인'이자 '가해자'인 의료진·병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조정 개시율이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명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증 상해를 입은 경우 병원 측의 동의 없이도 중재를 시작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해철법'은 과거에 '예강이법'으로 불렸다.

예강이는 2014년 코피가 멈추지 않아서 찾은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요추천자 시술을 받다 쇼크로 사망했다.

예강이의 부모는 딸의 사인을 밝히고 의료진의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조정을 신청했지만 병원 측이 조정을 거부하면서 기각됐다.

이 법이 시행되는 11월 30일부터는 병원 측이 반대해도 조정 절차가 시작돼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권익이 다소 신장할 전망이다.

다만 피해자가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에 해당하는 '중상해'나 사망했을 경우에만 자동으로 조정 절차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 논란거리로 남았다.

김승희 의원은 "자동 개시의 제한적 범위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의료기관 종별로 조정 개시 및 불참에 대한 각각의 원인을 분석해 그에 맞는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junm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