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그룹 경영권 고려" VS "총수에 비리 책임 물어야"
"김수남 총장, 무엇이 '원칙'인지 원점에서 검토하면서 고민"

롯데그룹 비리의 정점에 있는 신동빈(61) 회장의 신병 처리 방향을 놓고 검찰이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23일에도 신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아마도 오늘은 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2천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20일 신 회장을 불러 조사한 뒤 사흘째 고민을 거듭하는 셈이다.

신 회장의 운명은 주말·휴일을 넘기고 다음 주 초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재벌 총수 등 핵심 피의자의 경우 대체로 소환 조사 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결정됐다.

일례로 2014년 거액의 횡령·배임·탈세 등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이재현(56) CJ그룹 회장은 그해 6월 25일 소환 조사를 받고서 다음 날 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롯데수사팀은 신 회장 조사를 마친 직후 대검찰청 수뇌부에 핵심 내용을 보고하면서 구속영장 청구 의견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총수 일가 범죄의 최종 책임자이자 혐의 내용, 죄질 등을 고려해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종 결정권자인 김수남 검찰총장도 대검 참모로부터 구두로 수사팀 의중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2∼23일 지방 출장 중이어서 공식적으로는 수사보고서를 읽지 못한 상태지만 신 회장의 신병처리를 놓고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우선 재계 5위이자 국내 최대 유통기업 수장을 구속했을 때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놓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이 부재할 경우 작년 '형제의 난' 이후 간신히 중심을 잡은 롯데그룹 경영권이 또 흔들릴 수 있다는 재계 일각의 우려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롯데측에선 신 회장이 구속되면 그룹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이러한 우려를 물리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될 경우 '과잉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민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불구속 기소'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 최정예 수사인력을 투입해 3개월 넘게 매달린 수사에서 총수에 대한 구속영장조차 시도하지 않고 마무리했을 때 안팎에서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큰 부담이다.

특히 롯데 수사는 김수남호(號)가 들어선 뒤 첫 재벌기업 수사라는 상징성이 있다.

검찰이 수사 논리를 우선적인 원칙으로 내세우지 않고 '정무적 판단'을 한 선례를 남길 경우 향후 대기업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 유력 인사의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 검찰이 장기간 숙고한 사례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검찰은 작년 포스코 비리에 연루된 이상득(81) 전 새누리당 의원을 10월 5일 소환조사한 뒤 장고를 거듭하다 22일 만에 80대 고령과 지병 등을 이유로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06년에는 현대차그룹 비자금 의혹의 중심에 선 정몽구(78) 회장을 4월 24일 소환하고서 사흘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검찰은 정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 가운데 누구에게 영장을 청구할지를 놓고 고심하다 부친에게 영장을 청구하고 아들은 불구속 수사키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에도 검찰 안팎에선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국가 경제 및 기업경영 공백을 우려하는 의견이 맞섰으나 검찰은 고민 끝에 '법과 원칙'을 선택했다.

그러나 김 총장은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견지할 '원칙'이 무엇인지, 어떤 최종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판단에 따라 영장 청구와 불구속 수사라는 두 가지 상반된 선택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이보배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