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수술 근거법령 없고 개인 기본권 침해"…위자료는 다소 줄어
"국가만이 아닌 그 시대 사회 다수 책임"…다른 재판에 영향 전망

강제로 정관·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인들에게 국가가 개인권리 침해에 따른 불법행위 책임을 지고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다시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30부(강영수 부장판사)는 23일 A씨 등 139명의 한센인이 낸 국가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국가가 남녀 피해자들에게 동등하게 2천만원씩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앞서 1심은 단종(斷種·정관수술) 피해자인 남성에게 3천만원씩, 낙태 피해자인 여성에게 4천만원씩 국가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국가가 한센인들에게 단종·낙태 수술을 한 것은 근거 법령이 없이 이뤄진 일"이라며 "이로써 한센인의 인격권과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위자료 액수에 대해선 "1심에선 낙태수술을 받은 여성들의 신체 침해 정도를 더 심하게 보고 위자료에 차이를 뒀지만, 각기 받았을 정신적 고통엔 경중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두 2천만원으로 정했다.

1심에서 인정된 위자료액보다 줄어든 것과 관련,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병 치료를 위해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시행해왔고 한센병에 대한 사회 편견과 차별 해소를 위한 계몽정책을 실시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소록도 병원 한센병 환자 자치회에서 발간한 잡지에 실려 있던 '경계인'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사회에서 차별받아온 한센인 환자들에게 국가를 대신해 위로와 치유의 뜻을 전했다.

재판부는 "한센인들은 정당한 구성원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사회의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경계선 너머에서 이질적 존재로 척박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며 "이런 고통을 겪은 한센인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판결로써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만, 어찌 보면 국가 책임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사회 국민 대다수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자성했다.

이어 "오늘 판결로 한센인들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 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으로 거듭나는 데 작은 밑거름이나마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법 사상 처음으로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특별재판을 열어 한센인의 피해 증언을 듣고 현장검증까지 하며 치밀하게 사실관계를 따졌다.

그런 만큼 이날 선고 결과가 다른 진행 사건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단종·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인 500여명은 국가가 수술을 강제로 시켰다며 2011년부터 5차례에 걸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간 법원은 단종 피해자에게 3천만원, 낙태 피해자에게 4천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으나 정부는 "한센인들이 자발적으로 수술을 받은 것"이라며 불복했다.

정부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 1건이 계류 중이고, 이날 선고 사건을 포함해 서울고법에 4건이 있다.

사망한 한센인의 상속인이 낸 소송 1건도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이다.

정부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한센병이 유전된다'고 잘못 믿고 동거를 원하는 부부에게 강제수술을 해왔다.

이는 1990년대까지 소록도를 비롯해 인천, 익산, 칠곡, 부산 등 내륙 국립요양소와 정착촌에서도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07년에서야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감금과 폭행, 강제노역, 강제 단종·낙태 등을 당한 피해자에게 의료·위로지원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