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비리를 파헤치는 검찰이 그룹 총수인 신동빈(61) 회장을 20일 소환 조사하면서 수사의 종착역을 목전에 두게 됐다.

이번 수사는 김수남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후 이뤄진 첫 재벌기업 수사이자 재계 5위 롯데그룹을 겨냥한 검찰의 첫 수사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검찰은 6월부터 3개월여의 수사를 통해 총수 일가의 수천억원대 횡령·탈세·배임 혐의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인 비자금 조성 및 제2 롯데월드 인허가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은 실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사가 이대로 끝난다면 '미완의 수사'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재계 5위 그룹의 전근대적 경영행태 확인
롯데그룹 수사는 6월 10일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화했다.

롯데가 검찰 사정의 표적이 된 것은 1967년 창립 이래 처음이다.

검찰은 수사관 240여명을 투입해 소공동 본사와 신 회장 집무실·자택, 계열사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단일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전국 검찰청에서 가장 '화력'이 좋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첨단범죄수사부 검사들이 대거 투입됐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법조와 산업계에서는 검찰이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탈세·배임 등 각종 비리를 정조준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수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검찰은 사흘 뒤인 20일 주요 계열사 10여곳을 대상으로 2차 압수수색에 나섰다.

아울러 신격호(94) 총괄회장과 자금관리 담당 임원으로부터 두 사람이 계열사에서 매년 300억원대 자금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자금 성격과 용처를 추적했다.

주요 계열사 비리도 속속 드러났다.

롯데케미칼은 정부를 상대로 270억원대 소송 사기 혐의가 포착돼 기 준(70) 전 사장이 구속됐다.

롯데케미칼은 해외 원료를 수입하는 과정에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넣어 '통행료'를 지급하는 수법으로 2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도 제기됐다.

롯데홈쇼핑은 작년 초 채널 재승인을 위한 금품 로비 정황이 드러나 강현구(56) 사장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또 롯데건설이 최근 10년간 3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를 잡고 추적에 나섰다.

오너 일가의 각종 탈법 비위 행위도 확인됐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맏딸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사실혼 관계인 세번째 부인 서미경(57)씨 등에게 편법 증여하며 증여세 수천억원을 탈루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에 적발된 재벌 총수 일가의 탈루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신 회장은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 총괄회장의 막내딸 유미(33)씨를 일본 계열사의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려놓고 각각 400억여원, 100억여원의 급여를 지급해 횡령 혐의를 받게 됐다.

계열사간 부당 자산 거래, 총수 일가 관련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1천억원 이상의 배임 혐의도 확인됐다.

신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액수는 2천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허수영(65) 롯데케미칼 사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의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돼 검찰의 성적표가 초라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장급 중 구속된 인사는 전직인 기 전 사장이 유일하다.

총수 일가에선 80억원대 뒷돈 수수·횡령 혐의로 신 이사장이 구속됐다.

◇ 비자금·제2 롯데월드 의혹 규명은 숙제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검찰은 초기부터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자산개발·롯데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의 부외자금을 의심해 맹렬하게 파헤쳤으나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거액의 '비자금 저수지'가 확인된 롯데건설쪽도 총수 일가나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와 연결된 흔적은 찾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그룹 2인자인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이 지난달 26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유력한 연결고리마저 끊겼다.

롯데홈쇼핑의 9억원대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은 강현구 사장의 구속영장이 한차례 기각돼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도 있지만 늦어도 이달 말까지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검찰 입장을 고려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제2 롯데월드 인허가 로비 의혹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 사안은 이명박 정부 유력 인사들의 금품 비리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핫이슈'였다.

수사팀은 "단서가 있어야 수사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수사는 생물"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초기에는 검찰 수사가 결국 제2 롯데월드를 지렛대 삼아 전 정권 실세들을 겨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7월엔 장경작(73) 전 호텔롯데 총괄사장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 알려지며 제2 롯데월드 수사가 임박했다는 설도 나왔다.

장 전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제2 롯데월드 인·허가를 진두지휘한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비자금 수사와 맞물려 사실상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시행사인 롯데물산 압수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에선 물리적인 수사 여건이 좋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한국과 일본 두나라에 걸쳐있는 롯데그룹의 불투명하고 복잡한 지배구조가 수사의 발목을 잡은 측면도 없지 않다.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지배구조 탓에 정확한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통행료 비자금' 의혹 수사가 일본 롯데측의 자료 제출 거부로 벽에 가로막힌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사 과정에서 롯데측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내내 논란이 됐다.

검찰은 1·2차 압수수색 당시 롯데건설·롯데홈쇼핑 등에서 광범위한 증거인멸 정황을 파악했다.

수사팀 내에서 "대기업을 수사하며 이런 적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증여세 탈루 혐의가 있는 서씨가 일본 체류를 고집하며 소환에 불응한 것도 비판 대상이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