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피의자, 여성혐오 우발 범죄? 종교시설 표적 왜?

제주 성당에서 기도하던 60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달아난 사건은 중국인 관광객의 여성에 대한 반감으로 저질러진 '묻지마 범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피의자의 진술을 모두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데다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정황도 있어 경찰이 앞으로 밝혀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정신적으로 가장 안전한 장소인 종교 시설을 범행 장소로 삼아 사회 불안을 증폭시킨 만큼 그 배경도 밝혀야 할 점이다.

경찰은 중국인 피의자 첸모(50)씨가 지난 13일 제주에 무사증으로 온 직후 흉기를 직접 샀고 여러 차례 숙소 인근의 성당에 갔던 점이 확인돼 정확한 동기에 대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계획 범행 정황
첸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사실을 털어놓으며 "여성에 대한 반감과 원한이 깊다. 성당에 갔는데 여성 한 명이 혼자 기도하고 있길래 이혼한 아내들이 떠올라 갑자기 화가나 범행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혐오가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아내 모두가 바람이 나 도망가 증오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 김씨(61)는 첸씨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데다 중국과도 상관이 없는 인물로 조사됐다.

박기남 제주경찰서장은 "첸씨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모든) 여성들에 대해 이혼 여성과 동일시해서 범행했다는 것인데, 전 아내들에 대한 반감을 다른 여성들에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라며 여성혐오 범죄 가능성에 대한 수사 여지를 밝혔다.

이와 동시에 첸씨가 진술한 내용이 사실인지와 논리적으로 맞는지를 살펴보며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볼 계획이다.

첸씨는 '갑자기 화가나 범행했다'고 진술했으나 단순히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사전 계획된 범행이라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첸씨가 입국 직후 흉기를 직접 산 데다 범행 전 같은 성당에 2∼3차례 들렸던 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날 범행 당시처럼 그 전에도 배낭 안에 흉기를 담고 정문을 통해 출입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기도하고 있던 한국인 여성을 보고 갑자기 전 아내가 떠올라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지만 우발적 범행과는 전혀 다른 동선이다.

'성당에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려고 갔다'는 그가 흉기를 들고 있었다는 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첸씨가 범행 후 혼자 택시를 타고 40여㎞ 떨어진 서귀포까지 도주한 점도 석연치 않다.

◇ 종교 시설이 범행표적 왜?
피의자 천씨의 제주 방문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첸씨나 그의 전 아내들의 종교는 가톨릭과 무관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첸씨는 줄곧 숙소 인근의 성당을 노려 왔다.

경찰은 첸씨가 성당의 경우 출입이 자유로워 범행의 표적으로 삼기 쉬운 데다 도주하기에도 용의한 것으로 본 것은 아닌지 수사하고 있다.

폐쇄회로(CC)TV 화면상으로는 범행을 저지른 이날도 오전 8시 45분 첸씨가 성당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불과 3분만인 오전 8시 48분 다른 문으로 빠져나와 달아났다.

3분 사이에 흉기로 기도하던 피해 여성을 찌르고 달아난 것이다.

성당에 몇 차례 오가면서 다른 장소보다 수월하게 범행하고 달아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며 범행에 대한 표적을 구체화했을 수도 있다.

성당의 경우 새벽 미사를 진행한 후 신자들이 빠져나가면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첸씨에게는 범행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첸씨가 '회개를 하려고 했다'고 진술한 점에서 종교시설이 주는 위안감을 잘못된 범죄에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도 조사대상이다.

피해 여성인 김씨는 현재 의식이 없는 채 위독한 상태다.

긴급 수술을 받았으나 흉기에 찔리면서 피를 많이 흘려 경과를 지켜봐야 회복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ko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