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먹고 인명구조용 닥터헬기서 난동…프로펠러서 미끄럼 타기도
울산 도로변 방음유리 26장 파손…5개월동안 방치 상태

"도롯가에 방음벽 유리가 줄줄이 깨져있어요."

8일 울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한 운전자로부터 도로 방음벽 유리 파손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확인해보니 남구 신복로터리 인근 남부순환도로변 약 200m 구간 방음벽에 시야 확보를 위해 설치된 유리 26장이 하나 건너 하나 꼴로 깨져있었다.

가로 1m, 세로 0.5m가량의 유리는 완전히 박살이 난 것부터 작은 구멍이 나거나 거미줄처럼 금이 간 것까지 다양했다.

부분적으로 깨졌거나 긁힌 유리를 살펴보니 차도가 아닌 인도 쪽에서 충격이 가해진 것으로 보였다.

특정 구간 유리가 집중적으로 깨진 것이나 유리가 손상된 형태로 볼 때 사람이 둔기나 돌멩이 따위로 고의로 손괴했을 가능성이 컸다.

경찰은 재물손괴 범죄를 염두에 두고 수사에 착수하는 한편, 관리 주체인 울산시에 방음벽 파손 사실을 통보했다.

그런데 시는 이미 7월 중순에 해당 민원을 접수,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민원인은 '4월부터 유리가 깨져있었는데, 보수가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민원 내용이 맞는다면 9월 8일 현재까지 약 5개월 동안 방음유리가 깨진 채 방치됐다는 셈이다.

시는 4월은 고사하고 민원을 접수한 7월 이후로도 깨진 유리를 교체하거나 유리를 깬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현장을 방치하고 있다.

현장 주변에 사는 주민은 "초등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통학로인데도 수개월 동안 유리가 깨진 채로 있다"면서 "방음 효과나 미관이 나빠질 뿐 아니라, 깨진 유리 자체로도 위험하여 신속히 보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 관계자는 "예산 확보에 시간이 걸려 유리 교체가 늦어지고 있으며, 사람이 의도적으로 깼다는 증거가 없어 수사 의뢰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의심이 들었을 때 신고를 했다면 수사가 쉬웠을 것"이라면서 "늦은 감이 있지만, 주변 CCTV부터 확인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민의 재산인 공공기물을 아무 이유 없이, 또는 술에 취했거나 화가 난다는 이유로 훼손하는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범죄로 간주되는 극단적인 행위도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다.

사유재산에 비해 공유재산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거나, 공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몰지각한 행동은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저해하는 한편 사회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부끄러운 행위다.

지난달 충남 천안시 단국대병원에서는 충남도가 도입한 닥터헬기가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들에게 파손되는 일이 있었다.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리는 닥터헬기는 기내에 각종 응급의료 장비를 갖추고, 출동 시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1급 응급구조사) 등이 동승해 현장에서 후송병원까지 응급처치할 수 있는 최첨단 응급의료시스템이다.

헬기 운용사 관계자가 헬기 동체 윗부분이 찌그러지고 프로펠러 구동축이 휘어져 있는 등 피해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수리 견적이 수억원으로 예상될 정도로 크게 손상됐다.

CCTV 분석 결과 8월 11일 오후 9시 45분께 남성 3명이 2m 높이 헬기장 울타리를 넘어 침입, 헬기 위에서 장난을 치거나 프로펠러에서 미끄럼을 타는 모습이 확인됐다.

경찰은 영상 분석과 탐문수사로 3명을 모두 검거했다.

피의자 중에는 수년 전 단국대병원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현재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현직 의사 A(42)씨도 있었다.

A씨 등은 3년 전 무선 조종 비행기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로, 범행 당일 동호회 모임에서 술을 마신 뒤 헬기에서 난동을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광역시에서는 6월 6일 북구청 앞 교통섬에 설치된 시가 400만원 상당의 말 형상 조형물이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길이 58㎝, 높이 60㎝, 무게 25㎏인 이 동상인 광주 북구 8경 중 하나인 말바우시장을 소개하기 위해 올해 4월 설치된 작품이다.

힘차게 앞발을 치켜든 말 모양의 동상은 말바우시장이 '말'이라는 단어와 바위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 '바우'가 결합한 지명이라는 점에 착안해 제작됐다.

범인은 취객이었다.

사흘 만에 자수한 송모(30)씨는 "술에 취해 지나가다가 동상을 발견하고 차에 실었다"고 진술했다.

광주 북구는 송씨로부터 동상을 돌려받았지만, 곧장 제자리에 재설치하지 못한 채 약 3개월을 보냈다.

복원 예산을 갑자기 마련할 길이 없어 설치업체 측에 무상복원을 부탁하는 과정에서 시일이 걸린 것이다.

동상은 우여곡절 끝에 8월 31일 다시 설치됐다.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동상 밑에는 청동 보강제가 덧대졌다.

충북 청주에서는 8월 25일 도로변에 심어진 수령 30년 아름드리 버즘나무 줄기가 절반가량 잘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로수를 전기톱으로 자른 이모(58)씨는 훼손 현장을 목격한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는 같은 달 중순 가로수 옆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도난당하는 피해를 봤다.

경찰이 절도범 검거를 위해 주변 CCTV를 확인했으나, 공교롭게도 가로수에 가려 범인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씨가 애꿎은 가로수에 화풀이한 것이다.

이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고, 나무를 다시 심는 데 필요한 100만원가량도 물게 됐다.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부장은 "거창한 공동체 의식이나 준법정신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공공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기본적인 생각만으로도 이런 문제는 개선될 수 있다"면서 "자치단체나 경찰도 '깨진 유리창 이론'(깨진 유리창과 같은 작은 부분을 그대로 놔두면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론)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공공기물 파손 등의 행위에 원칙을 갖고 보다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우열 박철홍 한종구 허광무)


(전국종합=연합뉴스) hk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