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장만도 인터넷서 '클릭'…작년 추석보다 50% 급증
전 부지고 송편빚기 점차 사라져…"음식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아 좋아"

주부 7년차인 김모(35)씨는 추석 차례상과 음식 준비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터넷에 '차례상 차림', '추석 음식 주문' 등의 단어를 입력하자 각종 전 모음 세트부터 완제품 차례상까지 명절 음식을 판매하는 다양한 쇼핑몰이 검색됐다.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23만원짜리 차례상을 클릭했다.

음식은 추석 전날인 14일에 배달되도록 주문했다.

직장을 다니는 김씨에게는 그동안 명절 차례상 준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명절 증후군'에 시달릴 정도였다.

작년 추석부터 완제품 차례상을 주문하면서 명절을 앞두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일일이 재료를 구입해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도 많이 비싸지 않은 것 같아 내심 만족스러웠다.

김씨는 "작년 설을 지내고 몸살을 앓은 뒤 시어머니에게 차례 음식을 구입하겠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 허락을 받았다"며 "이제는 명절 부담에서 벗어 난 것 같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분위기는 쇼핑몰의 차례상 판매액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에 따르면 추석을 2주가량 앞둔 지난달 25부터 31일까지 차례상 완제품 주문량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추석 전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했다.

올해 설과 비교해서는 무려 133% 늘었다.

최근에는 나이 많은 연령층의 차례 음식 주문도 늘고 있다.

즐거워야 할 명절에 음식을 만드느라 가족끼리 갈등을 빚고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던 40∼50대 중·장년층이 명절 준비의 주체가 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음식 만들기와 기름 냄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경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G마켓에서 차례상을 가장 많이 구매한 연령은 30대(39%)였다.

그러나 올해는 50대의 차례상 구매가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면서 31%를 차지,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60대 이상 고객 주문량도 2배 넘게 늘어 비중이 22%에 달했다.

명절의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추석을 상상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장면도 이제는 서서히 옛 풍경이 되고 있다.

핵가족화되면서 명절에 모이는 가족의 인원이 많지 않은 데다 입맛도 세월을 따라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모(52)씨도 몇 년 전부터 추석 음식을 준비하면서 송편을 직접 빚는 것을 포기했다.

젊은 사람들처럼 음식을 통째로 주문하진 않지만, 손이 많이 가는 동태전 등 일부 음식도 인근 재래시장에서 만들어 놓은 것을 구입한다.

이씨는 "송편을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가족들이 송편을 잘 먹지도 않아 몇 년 전부터 차례상 차림에 필요한 만큼만 떡집에 구입한다"며 "모처럼 온 조카들도 송편보다 피자 등을 더 좋아해 간식은 동네 피자집에 주문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명절이 차례를 지내는 날이 아니라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나 '쉬는 날'로 점차 변하고 있다.

정모(58)씨는 "음식 냄새와 상을 가득 채운 송편으로 대표되는 추석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지만, 며칠간 음식 준비를 하고 엄청난 설거지를 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며 "아내의 눈치를 보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몇 해 전부터 명절에는 차례를 지낸 뒤 가족들이 함께 근처 유원지 등을 다녀온 뒤 피자나 치킨 등을 시켜 먹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명절의 새로운 재미가 됐다"며 "시대에 따라 명절의 풍속도 역시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명절의 풍속도가 점차 변하면서 피자, 치킨, 족발 등을 배달하는 업소들도 상당수 추석 연휴에 영업한다.

청주 용암동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는 박모(45)씨는 "오전에 일찌감치 성묘를 다녀온 뒤 영업준비를 한다"며 "예전에는 2∼3일 문을 닫았지만, 요즘에는 명절 오후부터 주문이 몰리는 데다 경쟁 업소도 많아 쉴 수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bw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