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카페'서 사라진 발달장애 아동 누구도 신고 안해
"인성교육과 공동체 훈련 강화해야" 전문가 '이구동성'


1964년 3월 13일 미국 뉴욕 한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키티는 약 35분 동안 칼에 찔리고 성폭행을 당했지만 이를 목격한 이웃 38명은 누구도 현장으로 가서 그녀를 돕지 않았다.

'살려달라, 도와달라'며 비명을 지르던 그녀가 결국 숨지고 난 후에야 주민 1명이 경찰에 신고했을 뿐이다.

많은 이웃의 도덕성 논란을 불러온 이 사건을 두고 '제노비스 신드롬' 또는 '방관자 효과'라는 표현이 생겼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지 않은 채 방관하고,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는 '무관심' 현상을 일컫는다.

최근 국내에서도 키즈카페에서 사라진 5세 발달장애 아동이 인근 공원 호수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실종되던 날 키즈카페와 공원은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상황이었다.

맨발로 뛰어나와 불편하게 공원을 거닐었을 발달장애 5세 아동을 누구 하나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급작스러운 심정지로 사고를 낸 택시기사를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이 개인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떠나는 등 사회에 만연한 '무관심'이 병폐가 되고 있다.

이 승객은 사고 현장을 지켜보던 다른 목격자들에게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휴대전화가 있었음에도 119구급대에 신고하지 않고 2시간여 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전문가들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외면하지 못하도록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과 더불어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 '나만 목격한 게 아닌데…' 무관심 '만연'
지난 3일 오후 2시 23분께 발달장애 아동 A(5)군이 올림픽공원 내 키즈카페에서 나간 뒤 4일 오전 9시 36분께 공원 내 호수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실종 당시 키즈카페 내에 함께 있었던 A군 어머니는 아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속 A군을 찾다가 같은 날 오후 3시 4분께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출동해 지구대 경찰뿐만 아니라 강력팀과 방범순찰대 1개 중대까지 동원해 늦은 시간까지 공원 안과 주변 지하철역까지 수색을 벌였다.

공원 안에 폐쇄회로(CC)TV가 하나도 없어 A군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실종 전 모습이 찍힌 CCTV는 키즈카페 안에 설치된 CCTV였으나 A군이 맨발로 밖으로 뛰어나가는 장면만 찍혔다.

당시 키즈카페 안에는 행사가 열려서 많은 사람으로 매우 붐비는 상황이었다.

일단 경찰은 발달장애를 겪는 A군이 호수에 뛰어들어 익사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지만,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당시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타살 혐의점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많은 인파로 붐비는 상황이었음에도 누구 하나 A군을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자식도 아닌데'라며 모른 척 눈 감고 방관하지만 않았다면 A군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최근에는 택시기사가 운행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결국 숨졌지만, 당시 택시에 탔던 승객들은 기사에 대한 응급 조처를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승객들은 사고 현장을 떠나면서 주변 목격자들에게 "신고를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고 당시 직접 119구급대에 신고를 하는 등의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자리를 떠 도덕적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고 당시 택시에 탔던 승객들은 사고 2시간 후에야 경찰서에 직접 전화해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경찰에 전화해 "공항버스 출발 시각이 10분밖에 남지 않아 바로 가야 했다, 귀국하는 대로 경찰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승객들이 '신고해달라'고 요청하는 목소리가 블랙박스에 저장돼 있다"며 "사고 시간이 출근 시간대라 목격자들이 많이 있어 119 신고가 비교적 금방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에 복잡한 일에 연루되기 싫고 귀찮아서 개입하지 않게 된다"며 "이번 사고가 사람이 밀집한 대도시에서 발생하다 보니 '나만 목격한 게 아니라서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공동체 훈련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무관심'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조급증, 치열한 경쟁 등에 따른 사회적 병폐 현상으로 바라봤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지 않을 때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등 제도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과 더불어 공동체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조경덕 배재대 심리 철학상담학과 교수는 무관심의 이유에 대해 "현대인들은 모든 게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자신과 관계된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하는 조급증 때문에 전체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어졌다"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나만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자녀의 앞날과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이 극에 달했다"며 "신고를 하면 경찰서에 오라 가라 하는 부분이 귀찮고, 공권력을 믿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 관여하지 않으려다 보니 그냥 지나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어릴 적부터 인성교육과 맞물려 다른 사람과의 관계 훈련, 공동체 훈련 등을 노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야 한다"며 "세대마다 여유가 없어졌는데 공동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권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도 "내 책임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책임감 분산 현상이 생기고, 굳이 내가 움직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범죄를 목격했을 경우 신고를 해도 나중에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신고를 꺼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아동의 경우 예전에는 엄마가 보호하지 않아도 조부모, 삼촌, 고모 등 아이를 돌볼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보호받는 환경이 취약해졌다"며 "엄마의 시선에서 놓치면 사고를 당하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사회적 무관심이 최근 들어 이슈화되는 만큼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이를 공동체 회복을 위한 '터닝포인트'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닌데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자성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며 "불안 없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kj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