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측 "고령에 건강 안 좋아"…검찰 "과거 범법은 분명히 조사"

검찰이 건강 이상설에도 불구하고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직접 대면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검찰은 소환 조사를 할 방침이었지만 신 총괄회장 측은 고령과 건강 등을 이유로 방문조사를 요청해 조율 중이다.

앞서 서울가정법원은 지난달 31일 신 총괄회장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대리인이 법원의 허가 범위 내에서 주요 의사 결정을 하는 '한정후견'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신 총괄회장을 상대로 한 검찰의 구체적인 조사 방식과 강도, 처벌 여부 등에 큰 관심이 쏠린다.

롯데그룹 경영 비리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신 총괄회장에게 7일 오전 10시 검찰청사에 출석하도록 통보했다고 5일 밝혔다.

이에 대해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대표로 있는 SDJ코퍼레이션은 이날 신 총괄회장의 고령과 건강상태 등으로 인해 출석이 어려우니 방문조사를 해주면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어느 쪽이 되더라도 검찰이 서류 조사 등 간접적인 방법 대신 신 총괄회장을 청사에 나오라고 통보까지 해가며 직접 조사하기로 한 것은 상당한 '강수'로 풀이된다.

한정후견은 쉽게 말해 그에게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후견인이 대신 의사 결정을 내리라는 뜻이다.

후견인은 대리인으로서 법원이 정한 범위에서 대리·동의·취소권 등을 행사한다.

건강이 썩 좋지 않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법원에서 후견인까지 지정하면서 검찰이 신 총괄회장에 대해 서면 조사로 갈음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직접 조사를 결정한 건 그만큼 검찰이 이번 사건과 그의 혐의를 중대하게 본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신 총괄회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과 배임 등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된다.

검찰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2006년 차명 보유하던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 6.2%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 씨 모녀에게 편법 증여해 약 6천억원을 탈세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씨가 운영하는 롯데시네마 내 매점 등에 일감을 몰아줘 관련 계열사에 780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도 있다.

검찰은 한정후견 개시와 관계없이 이번 사건을 별개의 영역으로 두고 전격 소환을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정후견은 현시점의 재산거래에서 온전한 판단력이 부족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결정"이라며 "이번 조사는 과거 재산거래 중 범법적 요소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형법상 '심신미약'과 혼동할 수 있지만, 심신미약은 범행 시점에 판단력 결함이 있을 때 형을 줄여주는 제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정후견 개시 결정이 현재 조사받을 수 있는지, 형이 선고됐을 때 감수할 수 있는지 등에는 시사점이 있겠지만 형사처벌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정후견 결정이 일종의 '참고자료'는 될 수 있지만,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 처벌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이 올해 1월 신동빈-신동주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불거진 고소·고발전과 관련해 검찰의 방문조사를 받은 전례가 있고, 올해 초반까지 재판에 출석한 점도 참고가 됐다.

신 총괄회장 측 변호인은 건강과 인지 상태에 대한 검찰의 문의에 올해 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검찰에 출석하든 방문조사를 받게 되든 검찰이 신 총괄회장을 직접 조사해야 할 정도로 수사가 진전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song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