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원객들이 지난 7월 경희대 한방병원 복도에 붙은 병상 축소 반대 대자보를 보고 있다. / 한경 DB
내원객들이 지난 7월 경희대 한방병원 복도에 붙은 병상 축소 반대 대자보를 보고 있다.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경희대 한방병원은 최근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경희의료원이 지난 6월 말 공개한 ‘한방병원 병상 효율화 방안’에는 이 대학 한방병원 5개 병동 225개 병상을 3개 병동 171개 병상으로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올 3월엔 서울 대치동 소재 강남경희한방병원 문을 닫았다.

경희대 한방병원은 국내 한의학계에서 손꼽히는 곳이다. 그만큼 한의학의 위기가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네 한의원이 경영난에 폐업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흐름은 수년 전 대입배치표에서 이미 예고됐다. 한경닷컴이 종로학원하늘교육과 함께 분석한 1985~2015학년도 배치표(4년제 종합대·정시모집 기준, 5년 단위)에선 시기별 한의학의 성쇠(盛衰)가 읽혔다.

☞ <표>1985~2015학년도 문·이과 커트라인 상위 20개 학과

경희대 한의예과가 전국 자연계 학과 중 커트라인 상위 20곳에 진입한 것은 1995학년도. 2000학년도엔 경원대(현 가천대) 한의예과도 합류했다. 이어 2005학년도에는 경희대 한의예과가 전국 4위로 올라섰다. 위로는 서울대·연세대 의예과와 연세대 치의예과밖에 없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의학이 소재가 된 MBC 드라마 ‘허준’(1999~2000년 방영)이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시기와도 겹친다. 박인호 용인외대부고 3학년부장은 “2000년대 초중반 한의예과 인기가 높았다. 서울대 물리학과와 경희대 한의예과에 중복 합격하면 70~80%는 한의예과를 택했다”고 전했다.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0학년도부터는 한의예과가 순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착한 의사 만들기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휘문고의 신동원 교장은 “한의예과의 경우 영상의학 발달로 인체 내부를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의대에 비해 학생들 선호도가 떨어진 상황”이라고 이유를 분석했다.

시장 변화에 따른 수요·공급 악화가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자체 시장 포화, 현대의학과 건강기능식품 등 대체재 등장에 따른 수요 잠식, 두 가지가 핵심 요인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한의예과 선호도 하락은 결국 취업의 문제”라고 짚었다. 서울의 한 특수목적고 교사도 “입시가 생각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희소성과 수요가 있을 때 치고 나왔지만 한의원 포화, 진단의학 발달과 맞물려 한의예과 인기가 뚝 떨어졌다”고 했다.

대학들은 대안 마련에 나섰다. 한의학 대표주자 격인 경희대는 동·서양 의학 융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방침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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