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함께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연합뉴스
지난 7월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함께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연합뉴스
법원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4)에 대해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며 후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결정이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검찰은 1일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하는 등 롯데그룹 수사를 다시 본격화한다.

김성우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판사는 31일 신 총괄회장의 여동생 신정숙 씨가 청구한 성년후견 개시 심판 사건을 심리한 결과 신 총괄회장에 대해 한정후견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후견 개시는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의 재산관리·법률·의료행위 등 사무처리에 후견인이 대리·동의권 등을 행사하는 제도다. 이 중 한정후견은 대부분 일에 대해 후견을 받는 성년후견보다 후견 수준이 한 단계 낮은 결정이다.

김 판사는 “신 총괄회장 본인이 2010년부터 의료진에게 기억력 장애를 호소했고 아리셉트 등 치매 치료약을 지속적으로 처방받아 복용했다”며 “질병·고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해 한정후견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한정후견인으로는 사단법인 선을 선임했다. 이태운 전 서울고등법원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법원은 “자녀들 사이에 신 총괄회장의 신상 보호, 회사 경영권을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후견 사무를 수행할 전문 후견법인을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측은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신 전 부회장 측은 그동안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국내 5위인 롯데그룹 경영을 흔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그룹 본사 34층 운영권을 다시 롯데그룹에 넘겨 신 총괄회장이 건강을 회복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는 이번 결정으로 “신 총괄회장이 인정한 공식 후계자는 본인”이라는 신 전 부회장의 주장에 효력이 없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월 말 일본에서 광윤사를 상대로 ‘주주총회 및 이사회 결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 지분(28.1%)을 보유한 광윤사는 롯데그룹 지배구조에서 정점에 있는 기업이다.

검찰은 신 전 부회장을 1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의 자살로 잠시 중단됐던 롯데그룹 수사가 다시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신 전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도 거액의 급여를 받아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작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불거진 계열사 간 부당 자산 거래, 총수 일가 소유 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비자금 조성 및 탈세 등 여러 비리 의혹이 모두 조사 대상이다.

검찰은 일본에 체류하며 입국하지 않고 있는 서미경 씨에 대해선 계속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강제입국 등의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한정후견

민법에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 등 네 종류의 후견이 있다.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능력이 지속적으로 부족할 때 성년후견을 지정한다. 사무처리능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법률 행위를 할 능력이 남아 있으면 한정후견인을 지정한다. 한정후견인은 법원이 정한 범위에서 대상자의 재산을 관리하고 신상을 보호한다.

박한신/정인설/이상엽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