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에 사과·배 화상 피해 확산…물 대줘도 익을 기미 안 보여
유통업계 물량 확보 비상…소비 둔화로 가격은 작년과 비슷할 듯


충북 옥천군 군북면에 배 농사를 짓는 이승우(58)·장경식(55·여)씨 부부는 요즘 가뭄에 타들어가는 배밭에 물을 대느라 정신이 없다.

나무 밑동에 매단 비닐 봉투에 물을 가득 채워 두고 분무기를 돌려 메마른 잎사귀에 생명수를 공급하지만, 바싹 마른 배밭의 갈증을 달래기는 역부족하다.

2만5천㎡의 배밭이 있는 이씨 부부는 이 근방서 제법 이름난 농사꾼이다.

전체의 3분의 1은 추석에 맞춰 출하하는 '원황' 배다.

이 집 배는 워낙 달고 아삭거리는 식감이 좋아 추석마다 전국서 택배 주문이 쇄도한다.

작년 추석에는 15㎏짜리 800상자가 선물용으로 나갔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폭염과 가뭄으로 배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데다, 추석마저 예년보다 일러 출하 시기 조절이 좀처럼 힘들다.

한창 살이 오를 시기의 배 성장을 돕기 위해 열흘째 비상 급수를 하고 있지만, 혹독한 날씨에 주눅이 든 배는 좀처럼 생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24일 밭에서 만난 이씨는 "어제 첫 수확을 했는데, 아직 맛이 덜 들어 30상자만 겨우 건졌다"며 "굵기도 예전의 80%에 불과해 13∼14개로 채우던 상자에 18개까지 들어간다"고 말했다.

보은군 삼승면의 사과 재배 농민들도 울상이다.

'추석 사과'라고 불리는 홍로는 대개 9월 초 수확을 시작하지만, 올해는 더위 때문에 생육이 더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사과의 절반가량은 강한 직사광에 화상(일소·日燒)을 입어 상품가치가 없다.

햇볕에 덴 사과는 껍질이 누렇게 변하면서 딱딱해져 출하할 수 없게 된다.

1만㎡의 사과 농사를 짓는 이명희(56)씨는 "7월 중순 작황은 매우 좋았는데, 그 뒤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몰아치면서 농사가 엉망이 됐다"며 "성장이 멎은 사과는 어린아이 주먹 만한 상태고, 그나마 절반은 화상을 입어 못쓰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예년 같으면 농민들은 이 무렵 홍로 사과의 잎사귀를 따 줘 착색을 돕는다.

햇볕을 많이 쐬게 해 붉은 빛이 도는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올해는 꺾일 줄 모르는 폭염과 강한 일사광 탓에 이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

보은군농업기술센터의 우종택 특화작목계장은 "홍로는 수확 전 잎을 따내고 햇볕을 잘 받도록 이리저리 돌려 줘야 하는데, 지금은 일사광이 워낙 강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확기를 앞둔 사과가 자라지도, 익지도 않는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감이나 대추는 아예 제수용 출하를 포기한 상태다.

보은황토대추연합회 구지회(54) 사무총장은 "올해 못지않게 추석이 일렀던 2년 전에는 그래도 일부를 제수용으로 출하했는데, 올해는 가뭄 때문에 생육이 늦어져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영동에서는 감의 성장이 멎고 표면이 쭈글쭈글해지는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장세는 형성되지 않았지만, 과일 가격은 예년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정청탁 방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추석 선물시장이 위축된 데다, 맛이 덜 든 과일 대신 다른 품목으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농협 충북유통 관계자는 "아직 속단할 수 없지만, 이달 말부터 사과·배 등 제수용 과일 출하가 서서히 늘어날 것으로 보여 가격 폭등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협 충북유통은 이달 30일부터 추석 제수용 농산물 특별판매에 나선다.

(청주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bgi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