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특허권 분쟁에서는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입니다.”

특허 기술을 개발하던 ‘삼성맨’이 특허 기술을 지키는 변호사가 됐다. 기술사 출신 1호 변호사인 박일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33·변호사시험 3회·사진)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변호사’라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박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전기·컴퓨터공학부 석사까지 딴 전형적인 이공계 출신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7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 입사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기술원에서는 미래IT 연구소 소속으로 휴대폰 연구개발업무를 담당했다. 2009년에는 국가기술자격 중 가장 높은 등급인 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그가 딴 자격증 종목은 ‘컴퓨터시스템응용기술사’로 88회 기술사 시험에서 최연소로 합격했다.

삼성에서의 연구 성과도 좋았다. 삼성전자 기술총괄 기술인상 대상과 우수성과 부분 혁신상을 다른 연구원들과 공동수상했다. 10여건의 미국 특허를 출원해 등록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특허 출원 절차를 경험하고 지식재산권(IP)에 관심을 갖게 됐다. 때마침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그의 눈에 띄었다. 안정적인 연구원직을 내려놓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은 만큼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로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국내외 기업이 지식재산권에 명운을 걸면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시험 준비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1기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어서 누적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당시 법학적성시험(LEET)에 과학 관련 지문이 다수 출제돼 박 변호사에게 유리했다. 2009년 서울대 로스쿨 1기에 합격했다. 입학 즉시 군복무를 위해 휴학한 그는 전역 후 3기와 같이 로스쿨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 삼성연구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어디서도 공부로는 뒤처지지 않는 그였지만 로스쿨은 만만찮은 곳이었다. 박 변호사는 “이공계에 특화된 머리로 법학을 배우는 것이 어려운 데다 주변에 출중한 동기가 워낙 많아 주눅이 들 정도였다”며 “3년 내내 이를 악물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율촌과의 인연은 2학년 여름방학 때 율촌 인턴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시작됐다. 율촌은 그의 사회 경력을 높이 평가해 졸업도 하기 전에 입사를 제안했다.

박 변호사는 율촌 IP그룹에서 ‘팔방미인’으로 활약 중이다. 율촌은 특허 분쟁 사건을 맡으면 해당 분야 전문가로 팀을 꾸리는데 기술과 관련된 부분에서 박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다. 발명 내용이나 권리 범위 등이 담겨있는 특허 명세서를 분석하는 데 박 변호사의 전문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변호사는 “연구원은 기술을 개발하지만 변호사는 개발한 기술을 지키고 퍼뜨리며 가치를 더한다”며 “로스쿨 제도 덕분에 개인이 창출할 수 있는 가치의 크기가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