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두번째로 IOC 선수위원 된 탁구스타 유승민 씨
지난달 2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유승민(34·삼성생명 코치·사진)은 이튿날부터 올림픽 선수촌과 경기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선수들을 만났다. 그의 외롭고도 길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운동은 이달 18일까지 25일간 이어졌다.

마침내 선수촌 내 프레스룸에서 19일 오전 2시(한국시간) IOC 선수위원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독일의 펜싱 선수 브리타 하이데만이 가장 먼저 호명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아람의 ‘멈춰버린 1초’로 결승전에 올라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였다. 그다음 불린 이름은 ‘승민 유’였다. 프레스룸에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유승민이 IOC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2008년 당선된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40)에 이어 역대 두 번째 한국인 IOC 선수위원이다. 유승민은 투표에 참여한 선수 5815명 중 하이데만(독일·1603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544표를 얻었다.

선수위원은 일반 IOC 위원과 임기만 다를 뿐 권리와 의무는 똑같다. 임기 8년인 선수위원은 개최지와 올림픽 종목 선정 등 IOC의 주요 안건에 대한 투표권을 가진다. 유승민은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고 외로웠다”며 “한국에서 올 때도 당선이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응원해준 분들 덕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5년간은 나를 위해 뛰었다면 지금부터는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IOC 선수위원 후보 23명 중에는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살아 있는 전설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와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고지 등 유명인사가 많았다. 이신바예바는 이번 투표에서 수영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와 함께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유승민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97년 최연소 탁구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중국을 꺾고 남자 개인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등 올림픽에서 금·은·동을 모두 수확했다.

유승민은 “현장에 와보니 선수들이 선수위원 선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며 “발로 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버스정류장에서 선수들에게 인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은 그의 생일이었다. 이날 그는 벌에 쏘이는 봉변을 당했다. 다행히 한국 선수단 의무진에게 치료를 받아 선거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유승민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문대성과 방을 함께 쓰며 선수위원 이야기를 듣고 꿈을 키웠다”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IOC와 평창조직위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며 “IOC에서 일처리를 잘하는 스포츠 행정가로 인정받겠다”고 강조했다.

유승민은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이다. 현재 IOC 위원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문대성이 있다. 이 회장은 병상에 있어 활동이 어렵고, 문 위원은 박사 논문 표절 파문으로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직무가 정지됐다. 리우올림픽이 끝나면 임기도 끝난다. 유승민은 선수위원으로 21일 IOC 총회에 처음 참석한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