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형 "성폭력·아동학대 범죄, 재발방지 대책이 중요"
“성폭력 사건이나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을 때 추모 행사를 벌이거나 같이 슬퍼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민관이 따로 있을 수 없죠.”

지난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한 20대 여성이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정신이상자의 범죄냐, 여성혐오 범죄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이금형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사진)다. 2014년 12월 부산지방경찰청장을 끝으로 경찰 제복을 벗은 이 석좌교수는 경찰 역사 70년사에 여경으로서는 유일하게 경찰조직 2인자 자리인 치안정감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치안정감은 경찰 계급 체계에서 치안총감(경찰청장) 바로 아래 직급으로 5명(경찰청 차장, 서울·경기·부산경찰청장, 경찰대학장)밖에 없다.

퇴직 이후 고향인 청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수기집을 내는 등 전에 없는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지만 그의 가슴 한편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경찰청장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다. 이 석좌교수는 3월 4·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비례대표를 신청했지만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38년 경찰생활 경험이라는 자산에 정치라는 힘이 붙으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잘 안 됐죠. 조금 실망했지만 강남역 살인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의원 배지 없다고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경찰 생활 내내 부하직원의 “나중에 보고하겠습니다”는 말이 가장 싫었다는 이 석좌교수는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이른바 ‘전국아동여성안전네트워크’다. 황인자 전 국회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고, 글로벌여성미래포럼 녹색어머니중앙회 한국아동단체협의회 등 24개 단체가 뜻을 같이했다.

출범과 동시에 이 단체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범위를 늘리고 부모교육을 의무화하는 방향의 법 개정 추진을 선언했다. 7월에는 강남역 일대에서 ‘여성상대 범죄 추방’ 캠페인을 벌였다. 이 캠페인을 계기로 서초경찰서는 관내 공중화장실에 비상벨을 설치하고 순찰 동선에 공용화장실을 포함시키는 등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석좌교수는 2004년 ‘성매매와의 전쟁’ 선포 이후 2006년 서울 마포경찰서장 시절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 검거하고, 2011년 광주지방경찰청장으로 있으면서 영화 ‘도가니’ 사건의 재수사를 지휘하는 등 여성상대 범죄 전문가다.

다시 전공을 살리기로 한 그는 최근 서울에서 시어머니 병간호와 여성·아동 대상 범죄 추방 캠페인, 특강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경찰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지만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사회에 돌려줘야죠. 앞으로는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로서 좀 더 살만한 세상 만드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