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고 전형 1명도 없는 서울대·연대·이대
평생교육단과대학 신설을 둘러싸고 촉발된 ‘이화여대 점거농성 사태’를 계기로 국내 주요 대학들의 ‘학벌 장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옥스퍼드대 등이 선취업·후진학 학생을 위한 평생교육에 앞장서는 데 비해 서울대 이화여대 등 국내 주요 대학은 마련돼 있는 제도조차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대학별 2017학년도 재직자 전형 모집 인원을 조사한 결과 서울 지역 대학 34곳 중 이화여대를 포함해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9곳은 재직자 전형으로 한 명도 뽑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로 불리는 ‘빅3’ 중에선 고려대가 10명을 뽑기로 해 체면을 유지했다. 그나마 주요 대학 중에선 한양대 건국대 국민대 숙명여대 중앙대 정도가 선취업·후진학 학생들에게 문턱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2017학년도 4년제 대학 모집 인원(32만명) 중 재직자 전형에 배당된 몫은 4888명으로 1.5%가량이다.

재직자 특별전형(정원 외 선발)은 전문계고를 졸업한 뒤 직장을 다니다 직무능력 향상 등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려는 이들을 위한 제도다. 기회균형이란 취지에서 2009년 도입(고등교육법 시행령 29조)됐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서울대가 대표적이다. 학부 정원이 3136명으로 묶여 있어 정원 외 입학을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재직자 전형으로는 제도 시행 이후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이화여대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재직자 전형으로 선발한 인원이 없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교육부 지원(30억원)을 받아 평생단과대학을 신설하는 것이었으나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의 반대에 막혀 무산됐다. 이화여대는 평생교육단과대 정원 150명 중 1명만 정원 내 학생으로 뽑고, 나머지 149명은 정원 외 입학생으로 선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주요 대학이 기득권을 버리고 100세 시대에 맞게 평생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르웨이는 대학 등 고등교육 이수율이 한국만큼 높지만 대다수가 선취업·후진학 방식으로 고등교육 수요를 충족한다. 대학 신입생 중 25세 미만 비율이 노르웨이는 38%에 불과한 데 비해 한국은 89%(2013~2015년)에 달한다. 55~6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 기준으로도 한국은 17%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평생교육 후진국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문호를 여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도 익스텐션스쿨과 해리스맨체스터대라는 평생교육 성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평생교육을 고등교육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 거리”라며 “학위 취득이 목적이 아니라 재취업을 위한 기능훈련 등에 관한 평생교육은 사이버대 방송대 산업대 전문대 등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휘/김동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