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원 요금 폭탄 감당 못 해"…안 틀거나 하루 2~3시간 사용
선풍기·부채로 폭염 견뎌…경로당 30%는 에어컨 설치조차 안 돼


"정부가 지원하는 한 달 냉방비는 고작 5만원인데, 전기요금은 30만원을 훌쩍 넘으니 우리 처지에 어떻게 감히 에어컨을 틀어"

수은주가 35도까지 육박한 9일 오후 충북 단양군의 한 경로당에는 선풍기 1대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둘러앉은 4∼5명의 노인은 선풍기 바람으로는 가시지 않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연신 부채질을 했다.

순식간에 더위를 식혀 줄 에어컨이 방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제 할 일을 잃은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 속에서도 이 경로당은 하루 2∼3시간만 에어컨 가동, 겨우 더운 기운을 걷어내며 여름을 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이 지난달 경로당 25곳을 점검한 결과, 8곳이 아예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서다.

현도면 내 대부분 경로당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있어 에어컨을 틀어도 5만원 안팎의 요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노인들이 지레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해 손대지 않는다.

현도면사무소는 '전기료보다 소중한 건 어르신들의 건강입니다'라고 적힌 대형 스티커를 경로당에 부착하며 노인들에게 에어컨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대전시 서구의 한 경로당에는 매일 15∼20명의 노인이 '출근'해 점심까지 함께하며 종일 생활하지만, '요금 폭탄'이 겁이 나 시간을 정해놓고 에어컨을 가동한다.

이 경로당의 노인회장은 "전기료가 걱정 때문에 에어컨을 쉽게 켜지 못한다"며 "오후 3시가 지나면 에어컨을 끄고 생활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의 한 경로당도 에어컨은 있지만, 선풍기나 부채에 의존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 경로당의 관계자는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아예 켜지 않을 수 없어 잠깐씩만 작동한다"며 "대부분 시간은 선풍기를 켜놓고 있지만, 더운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에어컨이 설치된 대부분 경로당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됐지만,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 걱정에 어르신들은 선뜻 에어컨을 틀어놓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로당에 지원하는 냉방비는 7∼8월 두 달간 고작 10만원이다.

한 달에 5만원만 가지고 무더위를 버텨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 달 기온도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으로 예보됐지만, 9월에는 냉방비가 아예 지원되지 않아 아무런 대책이 없는 형편이다.

더위를 이기려고 냉방기를 가동하다 보면 한 달 전기요금이 수십만원을 훌쩍 넘기 일쑤다.

경로당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도 사실상 '그림의 떡'인 셈이다.

누진제 적용으로 전력 사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요금 폭탄을 맞는다는 언론 보도까지 접한 터라 올 여름에는 더더욱 에어컨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까지 겹치면서 경로당 노인들은 어느 해보다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경로당의 한 관계자는 "여름철에 에어컨을 자주 켜면 전기요금이 35만원까지 나온다"며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지만, 요즘 날씨가 워낙 더워 몇 시간은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에어컨이 설치된 경로당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충북 도내 경로당 4천51곳 가운데 에어컨이 있는 곳은 2천820곳에 불과하다.

70%를 밑돈다.

1천200여 곳의 경로당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은 선풍기와 부채에 의지해 '찜통'같은 더위를 견디고 있다.

심지어 일부 경로당은 냉방비 걱정 때문에 자치단체가 비용을 지원하는데도 에어컨 설치 신청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진천 군내 한 마을의 이장은 "요즘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냉방비가 만만치 않아서 군에 에어컨을 설치해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았다"며 "여름 두 달에만 지원하는 월 5만원으로 어떻게 에어컨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냉방비 지원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진천군의 한 관계자는 "5만원으로는 여름철 냉방비를 감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부족한 냉방비는 마을 기금 등에서 지원하거나 경로당의 다른 운영비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종구 박영서 변우열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bw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