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자치회 갈등 조정력 한계…치안공백 재점검 시급

조용한 한센인 마을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한센인 마을은 원생 자치회를 통해 대부분의 환자간 분쟁이나 갈등을 해결해 왔지만 이번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록도에 경찰관을 1명도 배치하지 않은 그동안의 치안 공백상황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9일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따르면 소록도에는 소록도병원에 입원한 환자 530명이 병원과 환자 거주지 마을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상태가 나쁜 환자는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한센인 마을은 소록도에 7곳이 있는데 한센인은 마을에 살면서 몸이 아프면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나아지면 마을로 돌아가는 식으로 생활한다.

병원에는 200여명의 의료인력과 관리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병원본관과 6개의 병동, 노인전문병동 1곳, 복지시설 5곳, 자원봉사회관 1곳, 관사 72곳, 기숙사 3곳, 종교시설 10곳 등이 있다.

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소록도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장기 거주 환자와, 비교적 최근에 입소했거나 입퇴원을 반복하는 환자로 구분된다.

소록도병원 입원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

한센 병력과 본인 의사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번 살인사건에 연루된 가해자와 피해자들도 모두 2010년 이후 비교적 최근에 소록도에 입소한 환자들이다.

소록도에서 이들 환자간 내부 갈등은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한센인들은 원생 자치회를 조직해 스스로 마을과 환자를 관리하고 병원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센인간 분쟁은 자치회를 통해 대부분 해결하므로 외부에 표출되는 경우가 없다.

과거에는 폭압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소하기도 했다.

1950년대 이전 일제시대에는 광주형무소 지소까지 만들어 한센인 범법자들을 현지에서 격리하기까지 했다.

해방 이후는 원생자치회가 조직되면서 병원에 접근을 꺼리는 당시 상황에 따라 소록도 내부 치안도 자치회가 도맡았다.

이같은 특수한 여건이 굳어지면서 그동안 경찰 치안력이나 공권력이 소록도 내부에까지 미치기 힘들었다.

치안센터 1곳이 있어 경찰관 1명이 소록도병원 인근에 상주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지난 2월 인사에서 빼내 현재는 치안센터만 있고 근무인력은 없는 상태다.

대신 다리 건너 녹동파출소에서 소록도를 관할하며 소록도병원까지 순찰을 돌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순찰도 병원 입구까지만이고 병원 내부나 한센인 마을까지는 아예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소록대교 개통 직후 한때 치안센터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한센인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살인사건으로 소록도의 치안 상황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공권력에 따른 상처가 뿌리 깊어 경찰이 마을에 들어가면 감시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며 "자치회가 치안력을 대신했으나 한계를 노출한 만큼 지금과 같은 치안형태를 점검해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병원에서는 이번 사건을 소록도 특유의 상황 때문에 발생한 갈등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여느 시골 마을에서도 주민간 폭력 상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소록도 마을도 마찬가지란 시각이다.

다만 치안력 부재에 대해서는 주민자치회나 경찰, 지자체 등과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정말 안타깝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환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치안상황도 관계기관과 재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고흥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b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