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학생·졸업생들 총장 인책 사퇴론 요구해 새 쟁점 부상

이화여대가 3일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 단과대) 설립 계획을 전격 백지화하면서 이레째 이어진 재학생과 졸업생의 본관 점거농성 사태가 해결의 발판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대학 측의 결단으로 사태 장기화는 피했으나 이번 사태에 대한 총장 인책 사퇴론이 학생과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어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이번 농성은 이대측이 교육부가 30억원을 지원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소통없이 일방적인 추진을 하면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5월에 교육부가 이 사업 추가 신청 공고를 내자 이대측은 계획서를 제출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선정 대학 발표가 날때까지 학내 구성원들에게 이 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소식을 접한 학생들은 지난달 28일 오후에 열린 대학평의원회 회의에 몰려가 설립 계획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학생들은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교수와 교직원 등 5명을 본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고 이들은 46시간만에 경찰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모인 농성 학생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론전'에서 학교 측을 압도했다.

농성 학생들은 결과적으로 설립 계획 철회라는 목적은 달성했으나 이제 경찰 수사를 눈앞에 두게 됐다.

경찰은 이들의 행동이 엄연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본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학생들의 행위는) 당연히 감금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면서 "채증자료를 바탕으로 감금 행위 주동자들을 이른 시일 안에 엄정하게 사법처리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학교측은 농성 중 발생한 일에 대해 학생측의 책임을 묻지 않을 방침이다.

1일 대학 측이 연 기자회견은 이번 사태의 '하이라이트'였다.

최경희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소통 부족을 해명하거나 학생들을 설득하려 하기 보다는 '남자 교수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기저귀를 던져줬다'는 사례 등 감금 상황에서 일부 학생들이 보인 과격한 행동을 비판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회견장에 들어온 학생들도 마음에 안 드는 발언이 나올 때면 큰 소리로 비웃거나 야유를 보내는 등 비신사적 태도를 보였다.

앞서 학생들은 농성 과정에서 학교 설립자의 동상에 페인트를 칠하고 계란을 던지는 반지성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교육부 지원 사업을 연이어 따낸 최 총장도 이번 사태로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됐다.

최총장은 올해 3월 인문역량강화(CORE) 사업, 역대 최대 재정지원사업인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PRIME) 사업에 이어 이번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까지 따내며 나름대로 학교발전을 위한 성과를 내왔다.

하지만 그동안 주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어온 '소통부족'과 일방적인 사업처리 등에 대한 불만이 이번 농성으로 폭발했고, 결국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을 철회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최 총장은 3일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철회 방침을 밝히면서 "저희 일이 이렇게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게 된 것이 너무나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겠다"며 "학교의 발전 과정에서 있는 일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대측이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의 백지화를 선언함으로써 점거 농성 사태는 조만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유증은 당분간 지속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어 주목된다.

우선 학생들이 평생교육대학 사업 철회와 관련한 교육부 공문을 공개할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수도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교수협의회와 인문대 교수 35명의 반대성명을 통해 이 사업에 반대 입장을 보여온 교수사회도 아직 술렁이고 있다.

교수협의회는 최 총장이 설립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밝힌 뒤에도 '이화의 명예를 실추시킨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서명운동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동문사회 일각에서도 그동안 이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여기에 학내 분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중간에 경찰병력의 투입을 요청하는 사태까지 이른데 따른 여파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8시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는 졸업생과 재학생 수천명(경찰 추산 5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집회는 이대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개연성이 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참석자들은 단과대 설립 철회를 환영하고 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농성 학생들은 "학교측의 연이은 밀실행정과 날치기 처리로 총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면서 "학내에 경찰 1천600명을 투입해 학생들을 진압한데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며 총장 인책 사퇴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졸업생들도 성명을 내고 "졸업생 대다수는 이번 사태로 학교 구성원의 신뢰를 잃은 총장에게 이화를맡길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면서 "이에 따라 졸업생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총장이 강력하게 책임을 지고 총장직을 사퇴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 학생 1천500여명은 공식 일정이 끝난 뒤에도 교내 ECC 계단에 앉아 "총장 사퇴" 등의 구호를 외치는 등 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교수들도 이번 사태에 대한 총장의 사과를 요구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 백지화로 사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는 했으나 총장 사퇴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대두하기 시작해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a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