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자동차와 피규어는 30대 남성의 소비 행태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한경 DB 및 게티이미지뱅크
고급 자동차와 피규어는 30대 남성의 소비 행태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한경 DB 및 게티이미지뱅크
[삼불남의 시대]
① 이태백과 사오정 사이, '삼불남'의 출현
② 30대 남성 사로잡은 '작은 사치'의 위안
③ "남처럼 말고, 나 혼자 재미있게 살게요"
④ 수입차 고집하는 30대男…"내 집은 포기, 차에 올인"
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민다…"난 소중하니까요"
⑥ "나만 사용하면 돼"…좁은 공간, 1인용 가전이면 OK
⑦ 주말엔 소개팅 대신 동호회…"30대 남자 마감입니다"

[ 김봉구 기자 ] 30대 중반의 남성 회사원 이도경씨(가명)는 서울 도심 오피스텔에 혼자 산다. 평균 이상 연봉의 직장에 입사해 곧바로 부모에게서 독립했다. 부모는 마흔 전에 결혼하라고 재촉하지만 이씨는 서두를 필요성을 못 느낀다. 사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결혼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더 큰 문제는 결혼 뒤다. 서울 시내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려면 등골이 휜다. 수억원씩 대출 받아 집을 마련한다 해도 값이 크게 뛸 것 같지 않다. 자녀까지 낳으면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대출 상환에 아이 뒷바라지까지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 정년까지 일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나’를 포기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없다. 지금 내 삶을 즐겁게 사는 것도 중요한데 말이다. 물론 ‘혼자서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한 몫 한다.

해서 이씨는 집 장만 생각부터 버렸다. 그러자 여러 옵션이 생겼다. 우선 자동차. 평소 점찍어둔 BMW 3시리즈를 샀다. 수입에 비해 과하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셈 치고 ‘질렀다’. “집 대신 차”라고 여기기로 했다. 차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주변 시선도 은근히 즐기고 있다.

동호회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차 동호회도 들었다. 덕분에 혼자 살아도 주말이 외롭지 않다. 동호회엔 또래가 많다. ‘차는 예뻐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이씨는 좋다. 답답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는 남과 똑같은 게 질색이다. ‘폼’일 수도, ‘가오’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길거리에서 나와의 ‘커플룩’을 마주치는 일은 썩 내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건 싫다. 고가라도 개성 있는 게 좋다. 덕분에 최근엔 100만원을 호가하는 구두와 자전거에 지갑을 열었다.

스스로에게 돈을 쓰는 건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이씨가 정기적으로 고급 바버숍을 찾는 이유다. 남성 기본 커트가 7만7000원, 비싼 편이지만 평일 저녁에도 예약이 꽉 차있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또래 남성들 속에서 그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강남 한 백화점에 들어선 남성 전용관은 이씨 같은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투자하는 남성)의 천국이다. 2개 층이 모두 남성 패션이나 취미 관련 물품을 취급한다. 보통 여성 대상 매장이나 40~50대 중장년층 남성 대상 매장이 많은데, 이곳에 가면 직접 체험해보고 살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는 입소문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이씨가 ‘금수저’는 아니다. 이미 충분히 무리했다. 그래서 덜 보이는 곳에는 씀씀이를 줄이고 실용성부터 따진다. 50㎡(15평) 크기의 오피스텔이 넉넉하지 않기도 하다.

냉장고는 1인가구를 겨냥해 출시한 슬림 스타일이다. 일반 냉장고보다 작아 공간 효율성이 높다. 세탁기와 전자레인지도 심플하고 꼭 필요한 기능만 갖춘 소형가전으로 구비했다. TV는 아예 없다. 대신 미니빔 프로젝터를 구입해 보고 싶은 영상은 큰 화면으로 본다.

집 한 편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와 접이식 자전거, 헬멧, 사이클복 등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모두 이씨의 취향을 저격하는 보물들이다.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좋아하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친구들과의 채팅창에서 추천 게임이나 관련 정보를 나누는 게 낙이다.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과 시간 맞춰 라이딩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취미를 즐기다 보면 주말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씨는 “기성세대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꼰대짓’ 하겠지만 삶이 팍팍하고 불안한데 결혼하고 애 낳고 집 사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참고 저축하는 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 싶다”면서 “내 취향을 존중하며 지금을 즐겁게 사는 게 합리적 선택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 이 기사는 한경닷컴 기자들의 [삼불남의 시대] 기획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의 30대 남성 관점에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상단 목록의 관심 있는 기사를 클릭하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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