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때 '심신상실' 인정 여부가 판단 기준

광란의 질주를 벌여 3명이 숨지는 등 24명의 사상자를 낸 김모(53)씨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이 사건을 수사하는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김씨에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인명피해가 큰 사건이어서 검찰은 김씨를 정식 재판에 넘길 개연성이 높다.

법원은 김씨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까.

김씨가 오래전부터 자신이 뇌전증을 앓고 있으며, 약을 제때 먹지 않았을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으므로 '심신상실'을 이유로 처벌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과거 유사한 사건 판례를 보면 사고 당시 김씨가 심신상실 상태였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사례 1.
A씨는 2011년 4월 25일 오후 4시 27분께 의무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화물차를 몰고 부산 연제구 거제동 동원아파트 앞 도로를 부산지검 앞에서 남문구 교차로 쪽으로 달리다가 앞에 정차 중이던 SM5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이어 다른 승용차와 승합차 등 차량 5대를 잇달아 추돌하고서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피해차량 운전자들이 전치 2∼4주의 상처를 입었고, 차들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수리비가 나올 정도로 파손됐다.

검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도로교통법 위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부산지법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도로교통법 위반은 무죄로 판결했다.

담당 판사는 "A씨가 사고 당시 뇌전증 발작으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결여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무죄 선고이유를 설명했다.

신체 감정 결과 A씨가 중등도 이상의 뇌전증을 앓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뇌전증 환자가 운전 중 발작하는 경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가속장치 등을 조작해 아무 방향으로나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인정했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검사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이 사건 교통사고 이전에는 자신에게 뇌전증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정신을 잃거나 발작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며 "A씨가 교통사고 이후 스스로 치료를 받고 있고, 스스로 운전면허 취소를 요구한 점 등을 보면 교통사고 당시 뇌전증 발작으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 사례 2.
B씨는 2013년 10월 23일 오후 1시 58분께 인천 서구 가좌동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해 건지사거리에서 가재울사거리 쪽으로 가고 있었다.

B씨는 신호 대기 정차 중이던 화물차를 들이받았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이어 1분 후 신호를 받느라 서 있던 승합차를 들이받고도 그대로 달아났다.

B씨와 변호인은 B씨가 뇌전증 환자로 사고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며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천지법은 "사건 경위와 결과, 범행 전후 B씨의 행동, 범행 후 정황 등을 종합해 보면 B씨가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였다고는 볼 수 없다"며 B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B씨는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약 1년 전 B씨가 뇌전증 진단을 받은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B씨가 사고 당시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 기각 사유를 밝혔다.

부산 법조계 한 인사는 "단순히 뇌전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교통사고 당시 심신장애 상태였다 인정할 수 없다"며 "평소 병력과 치료내용, 사고 경위나 과정, 사고 직후 행동이나 말투, 대처하는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osh998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