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최대 위자료 10억 넘도록"…옥시 "어른 3.5억·영유아 5.5억"
고의·중과실·소비자 기망시 증액 권고…배상안 확정 8월부터 접수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가 자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최대 3억5천만∼5억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법원에서 논의되는 '적정 액수'의 절반 수준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피해자들과 충분히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옥시는 31일 한국 정부의 1·2차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피해 가능성 거의 확실하거나(1급) 가능성이 높다는 판정(2급)을 받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안을 확정하고 8월부터 배상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성인 피해자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최대 3억5천만원(사망시)과 함께 과거·미래 치료비와 일실수입(다치거나 사망하지 않았을 경우 일을 해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 등을 배상받게 됐다.

사망·중상에 이른 영유아·어린이는 일실수입을 계산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 5억5천만원 등 총 10억원이 일괄 책정됐다.

경상이거나 증세가 호전된 어린이는 성인처럼 치료비·일실수입·위자료 등을 따로 산정한다.

최종 배상안은 앞서 세 차례 피해자 설명회에서 나온 기존 안과 대부분 같지만, 법률비용 지원을 확대하고 가족 중 피해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추가 위로금 5천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새로 포함됐다.

아 타울 라시드 사프달 옥시 대표는 "피해자와 가족분들의 상실감과 고통을 감히 가늠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피해자와 가족분들, 한국 국민 여러분께 큰 피해와 고통을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옥시가 제안한 위자료는 현재 법원이 옥시 사례와 같은 고의성 짙은 기업범죄 피해자가 배상받도록 하려는 액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법조계에선 "옥시가 피해자들을 '저가매수'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이달 '전국 민사법관 포럼'에서 기업의 위법행위로 시민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 현재 1억원 안팎인 사망 위자료를 2억∼3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올 가을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특 히 기업의 위법행위에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경우, 소비자를 속이는 홍보를 한 경우, 책임을 피하고자 증거를 은폐한 경우, 피해자가 아동이거나 피해 정도가 심각한 경우에는 기준 금액에서 1.5∼2.5배를 가산하고 여기에 50%를 추가로 증액할 수 있게 했다.

모든 증액 조건을 적용할 경우 최종 위자료는 11억2천500만원에 이른다.

법조계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대법원이 제시한 사실상 모든 증액 조건에 해당한다"며 "옥시의 배상안은 재판을 통해 결정될 수 있는 배상 액수에 대체로 미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와 유가족은 옥시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배상안으로 합의를 종용하고 있다며 영국 본사가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3·4등급 피해자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는 '반쪽짜리 배상안'이라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옥시가 합의를 서두르는 것이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앞두고 정부와 국회를 의식한 보여주기식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최 승운 피해자 유가족연대 대표는 "옥시가 피해자들을 만난 것은 '의견 수렴을 했다'고 말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며 "진정으로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면 배상도 중요하지만 영국 본사 최고경영자(CEO)의 직접적·공식적인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방현덕 기자 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