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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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남의 시대]
① 이태백과 사오정 사이, '삼불남'의 출현
② 30대 남성 사로잡은 '작은 사치'의 위안
③ "남처럼 말고, 나 혼자 재미있게 살게요"
④ 수입차 고집하는 30대男…"내 집은 포기, 차에 올인"
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민다…"난 소중하니까요"
⑥ "나만 사용하면 돼"…좁은 공간, 1인용 가전이면 OK
⑦ 주말엔 소개팅 대신 동호회…"30대 남자 마감입니다"

[ 김봉구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동영상 파문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도, 모두 30대 남성이 가장 많은 댓글을 달았다. 여성의 댓글이 많겠다 싶었던 “뚱뚱한 게 왜 창피한 거죠?”라고 되묻는 인터뷰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가 공개하는 댓글 통계를 살펴보면 이런 경향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위에서 사례로 든 기사는 지난달 16~22일 네이버 ‘주간 댓글’ 상위권을 차지한 뉴스다. 30대 남성의 득세가 예외 없이 발견됐다.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어느 정도 입증됐다. 네이버가 댓글 작성자 정보를 공개한 올해 4월부터 ‘통계로 보는 댓글’ 한 달여치를 분석한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성별로는 남성(81%)이, 연령대로는 30대(32%)가 댓글을 가장 많이 썼다. 다소 거칠게 도식화하면 ‘30대 남성’이라는 교집합이 만들어진다.
'통계로 보는 댓글' 사례. 30대 남성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 네이버 화면 갈무리
'통계로 보는 댓글' 사례. 30대 남성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 네이버 화면 갈무리
◆ 인터넷 댓글창 장악한 30대 남성

왜 30대 남성이 인터넷상에 댓글을 많이 쓸까.

“인터넷 댓글은 매우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라고 규정한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의 30대는 성장기부터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다. 또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30대의 생애주기적 특성상 불합리한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불만을 ‘구체적’으로 표출하는데, 인터넷 댓글은 그 한 형태로 생각된다”고 풀이했다.

30대 중에서도 남성 비중이 높은 데 대해선 “대체로 커뮤니티(공동체·관계) 지향적인 여성에 비해 남성은 마땅한 사회적 관계망이 없을 경우 인터넷상에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빈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개별화된 익명의 영역이란 점에서 인터넷 댓글은 현실보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띤다. 표현도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30대 남성이 이런 성격의 인터넷 댓글 공간에 적극 참여하는 사회·경제적 배경과 요인이 존재한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한 마디로 삶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 결혼 등 기존에 30대 남성이 영위했던 사회적 관계의 성취가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굉장히 위축됐다”면서 “30대, 그리고 남성이 인터넷 댓글을 많이 쓰는 현상은 이같은 불안정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취업·결혼 진짜 힘든 시대가 왔다

30대 남성을 둘러싼 여건이 나빠졌다는 얘기다. 몇몇 지표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5월 내놓은 ‘청년고용 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체감 청년실업률을 34%로 추산했다.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구직활동을 포기한 니트(NEET)족까지 포함한 수치다. 정부 발표 공식 청년실업률(8%)의 4배를 웃돌았다. 남성의 체감실업률(37%)이 특히 높았다.
1980~2010년 남녀 비혼 비율. / 출처= 이진숙, 이윤석(2014). 비혼 1인가구의 사회적 관계, 한국인구학.
1980~2010년 남녀 비혼 비율. / 출처= 이진숙, 이윤석(2014). 비혼 1인가구의 사회적 관계, 한국인구학.
최근 통계청이 공개한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서 눈에 띄는 지표는 30대 미혼율이다. 2010년 이미 40%에 달했다. 30~34세, 35~39세 구간 모두 남성 미혼율이 여성보다 10~20%포인트 가량 높았다. 이 추세대로라면 현재 30대 미혼율은 50%에 육박했을 터이다. 공식 통계는 미혼율이지만 상당수가 비혼(非婚)으로 추정된다.

수치상으로 결혼은 남성에게 더 난망한 문제다. 현재 30대가 태어난 1977~1986년 출생성비(여아 출생 100명당 남아 출생 수)를 보자. 104.2(1977년)와 111.7(1986년) 사이를 오간다. 출생성비가 110이라면 10대 1의 비율로 남성이 남아돈다는 의미다. 남성이 과잉 공급된 시기다.

◆ '삼불남'이 40대, 50대가 됐을 때

이른바 ‘삼불남(30대의 불안한 남성)’의 출현이라 할 만하다. ‘불확실성’ 큰 상황에 처한 30대 남성의 ‘불안’ 심리가 인터넷 댓글 폭주 같은 ‘불만’ 표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일관되게 3불(不)의 특징이 추출된다.

삼불남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과 사오정(45세가 넘으면 정리해고 대상) 사이에 정확히 낀 세대다. 갓 이태백을 지나왔지만 곧 사오정에 직면할 것이란 불안함이 주된 정서를 이룬다. 이 불안감은 어떤 매개체나 촉매를 만나 때로 혐오로, 때로는 분노로 변주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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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불만으로 이어졌다. 서울 소재 4년제대를 졸업한 30대 중반 회사원 유정한씨(가명)는 “윗세대는 황금기를 누리고 정년까지 채우고 나갈 텐데 우리 또래는 30대에 명예퇴직 권고 받는 게 현실이다. 솔직히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면 된다”는 아버지 세대와 30대 남성 간의 최대 변별점은 “해도 안 된다”는 체념에서 비롯된다. 이들 입장에선 취업이나 결혼, 출산·육아, 내 집 장만을 포기하는 게 되레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이형오 한국전략경영학회장(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은 “기성세대가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 현실을 인정해야 대책도 나온다”고 짚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현 상황이 30대 남성의 통과의례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대 현상은 시간을 두고 이어진다. 노진철 교수는 “직업이나 가족을 갖지 못한 지금의 30대가 40대, 50대가 된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불확실한 현재가 암울한 미래로 바뀌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 이제 막 불안사회의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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