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바다 누비던 항해사…'해상법 항로' 개척 순항 중
“한국 해운회사들은 왜 법적인 문제만 생기면 한국 변호사가 아니라 영국 변호사에게 전화를 겁니까?”

2010년 7월 영국의 항구도시인 리버풀에서 만난 영국인 도선사가 성우린 변호사(31·사진·변호사시험 4회)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는 이 질문이 항해사로 지낸 3년을 정리하고 로스쿨 진학을 결심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를 60기로 졸업한 뒤 항해사로 일하던 성 변호사는 법적 지식만 앞세워 변호에 나서는 변호사들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한번은 회사 승조원 중 한 명이 미국 연안에서 해상에 기름을 투기했다가 손해배상 사건에 휘말렸다. 사건을 맡은 사내변호사는 승조원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재판부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회사는 200만달러가 넘는 손해를 배상해야 했다. 성 변호사는 “해상법 관련 법적 분쟁 중 계약 관련 사건에는 해상 경험이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지만 선박 충돌과 좌초, 오염과 같은 선박 사고 사건에서는 해상 경험이 변론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가 항해사로 90여개 도시를 누빌 때 한국 해운회사는 연이은 해외 발주로 호황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호황의 빛’ 뒤에는 국제분쟁 증가라는 그늘도 있었다. 영국 해상법 전문 로펌 매출의 90%를 한국 회사들이 올려준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는 ‘블루오션의 항로’를 발견했다.

막상 로스쿨에 진학하려 하자 걱정이 앞섰다. 합격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꿈꾸는 전문 변호사로서의 역량을 로스쿨에서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로스쿨은 무늬만 특성화’라는 일각의 비판도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던 중 해상법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부산대 로스쿨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부산대 로스쿨 원장을 맡은 김승대 교수가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짜 특성화 교육을 하겠다고 나섰다. 부산대는 학기 중에 이론을 가르치고 방학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영국 해상법 전문 로펌 등에 보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성 변호사는 “로스쿨 특성화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부산대에서는 한진해운 사내변호사인 이정원 변호사와 해상법 전문인 서영화 법무법인 청해 변호사 등을 교수로 초빙해 매 학기 해상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말했다.

해상법 전문 변호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입학 후 관련 학회를 조직하는 등 순항했다. 그 결과 졸업도 하기 전에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충정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지난 14일에는 성 변호사가 주도해서 만든 ‘청년 해운·조선·물류인 모임’이 충정에서 첫 모임을 열었다. 실무 경험 덕분에 업계 관계자들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했기에 가능한 자리였다.

성 변호사는 로스쿨이 새로운 법률 서비스 분야를 창출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가 되려면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는다”며 “특정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면 그동안 한국 법조계에서 시장 수요만큼 내놓지 못하던 법률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