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불안감·대인 기피증 여전…수사보다 치료가 우선"
경찰, 전문가에 심리치료 의뢰…안정되면 수사 재개 방침

'강제노역 19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축사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지난 14일 극저긍로 가족의 품에 돌아온 지적 장애인 '만득이' 고모(47)씨는 사흘이 지난 16일에도 여전히 극심한 불안증세와 대인기피증을 보이고 있다.

지적 장애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심리적 상태도 불안정한 상태라 실종됐던 경위나 학대 여부를 파악하려는 경찰 수사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사건이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르면서 고씨에 대한 피해 조사를 서두를 방침이었던 경찰은 급기야 고씨에 대한 수사를 잠정 중단키로 했다.

수사보다 고씨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킬 치료가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찰은 전문보호기관에 의뢰, 고씨 심리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15일 피해자 조사를 한 청주 청원경찰서는 고씨가 계속 불안 증세를 보여 추가 수사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애초 16일에도 고씨를 불러 추가 조사를 벌인다는 게 경찰 계획이었다.

고씨 진술을 토대로 내주 초 강제노역을 시켰던 축사 주인 김모(68)씨를 불러 제기된 의혹을 집중 추궁하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15일 가족과 장애인 복지 전문가, 상담가 등이 배석한 경찰 조사에서 고씨는 경찰 발견 초기의 불안 증세와 대인기피증이 호전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났다.

이날 수사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가량 계속됐지만 실질적인 조사는 30분에 불과했다.

심리적 불안 상태에 있는 그를 안정시키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경찰 관계자는 "어머니와 상봉해 하루를 함께 지내면서 심리적 안정을 회복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조사해보니 그렇지 않았다"며 "전문가 상담치료을 통해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사도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 고씨 치료가 시급하다"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모호해 지금 단계에서 수사를 계속해도 피해 사실에 대한 구체적 진술 확보가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전문기관에 고씨 치료를 의뢰한 뒤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 지를 지켜본 뒤 다시 조사하기로 했다.

치료 기간 경찰은 고씨가 19년 동안 강제 노역한 축사 주인 김모(68)씨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한 차례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한 바 있는 경찰은 마을 주민들 증언 등을 토대로 부당 노동행위나 학대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후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재조사해 처벌 수위를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적 불안 상태에서도 고씨는 15일 경찰 수사에서 김씨에게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분명하게 진술했다.

그는 "축사에서 소똥을 치우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며 "소똥 치우는 것이 싫다.

농장에 다시는 돌아가기 싫다"고 19년간 이어진 강제노역 생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주인에게 맞은 적이 있다"는 점도 분명하게 밝혔다.

오송 어머니 집으로 돌아온 그는 마을 주민에게도 김씨에게 폭행당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고씨의 이런 진술과 함께 그의 몸 곳곳에 난 상처 등이 김씨의 학대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지적장애라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고씨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킨 것과 관련, 김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를 벌인 뒤 가혹행위 등 혐의를 추가할지를 검토할 방침이다.

김씨는 참고인 조사에서 "20여 년 전 소 중개업자가 데려온 이후 일을 시켰다"고 인정했으나 "감금하고 폭행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지난 12일 축사를 도망쳤다가 이틀 뒤인 14일 경찰에 발견돼 19년동안 강제노역한 김씨의 축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찰의 도움으로 생이별했던 칠순 노모와도 이날 극적으로 재회, 함께 살게 됐다.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logo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