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두자릿수 인상' 강력 요구…브렉시트·조선 구조조정 등에 좌절

내년 최저임금으로 의결된 '시급 6천470원'은 최저임금 인상 폭을 놓고 팽팽하게 맞선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을 최대한 절충한 안으로 볼 수 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강력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가 내심 바랐던 두자릿수 인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조선업 구조조정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대형 악재가 잇따르면서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주장을 들어주기 힘들다고 본 때문이다.

결국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7.3%로 정해져 최근 수년간 이어진 최저임금 인상률의 상승세가 꺾이게 됐다.

◇ '최저임금 두자릿수 인상' 염원, 조선 구조조정·브렉시트에 막혀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노동계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우선 세계 각 국에서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12달러로 대폭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영국은 시간당 6.7파운드였던 최저임금을 올해 7.2파운드, 2020년에는 9파운드(1만 5천원)까지 올린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인상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내놓았다.

이러한 바람을 반영하듯 4월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는 여야 모두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까지, 정의당은 2019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까지 내놓았다.

4월 총선에서 노동계에 호의적인 야권이 승리를 거머쥐면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꿈은 무르익는 듯했다.

노동계는 각종 집회와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1만원 인상론'을 내세우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적어도 두자릿수 인상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최저임금 협상이 본격화한 6월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세계경기 악화로 조선업의 신규 수주가 급감하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최대 6만명이 넘는 근로자가 실직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나오자, 최저임금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경영계의 목소리에도 점차 힘이 실렸다.

더구나 지난달 24일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론에 찬물을 끼얹은 대형 악재였다.

브렉시트로 세계 경기침체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론도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결국,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7.3% 인상된 6천470원으로 결정돼 두자릿수 인상의 염원은 좌절됐다.

◇ 노동-경영계 입장 절충한 '고육지책'으로 여겨져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7.3%로 결정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률의 상승 추세는 꺾이게 됐다.

2007년 12.3%였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경기둔화와 함께 8.3%(2008년), 6.1%(2009년)에 이어 2.8%(2010년)까지 떨어졌다.

이후 가계소득의 위축으로 내수가 살아나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최저임금 인상률은 5.1%(2011년), 6.0%(2012년), 6.1%(2013년), 7.2%(2014년), 7.1%(2015년)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8.1%도 지난해 인상률을 뛰어넘었다.

이러한 최저임금 인상률의 상승 추세가 꺾인 것은 조선 구조조정과 브렉시트 등으로 인한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심각한 경영난을 고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14차례의 회의를 여는 진통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6천470원으로 결정된 것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을 절충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양측을 모두 만족하게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만큼 절충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다만 올해에 이어 내년도 최저임금도 '시급'과 '월급'을 병기하게 된 것은 노동계의 성과로 여겨진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월급으로도 명시해 '주말 휴일수당'을 제대로 못 받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이러한 주장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공익위원들이 노동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월급 병기안은 통과됐다.

내년 최저임금은 209시간 기준 월 환산액으로도 명시된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 최저임금이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더라도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불만을 가졌을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저소득 근로자 소득기반 확충과 국내 경기둔화로 인한 중소기업 경영난 등 여러 요소를 두루 감안해 내린 결정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