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배려 부족…"인권 교육·주변 도움 등 사회안전망 강화해야"

40대의 한 지적 장애인은 2004년부터 충북 청주 김모(68)씨 축사에서 매일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이 남성은 돈 한푼 받지 못한 채 김씨 집에서 힘든 노역에 시달리다 최근 '주인이 무섭다'는 이유로 탈출해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박모(70)씨는 지난해 6월 초 전북 전주시의 한 주차장 부근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적 장애 3급인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또 지적 장애인을 협박해 대출을 받도록 한 뒤 이를 빼앗은 30대 고교 동창생 2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 최근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평소 주변 사람으로부터 냉대를 받던 지적 장애인들은 흔히 누군가 호의라도 보이면 고마워하고 쉽게 따르는 특성을 보인다.

가해자들은 이런 이들의 특성을 악용했다.

정상인보다 인지 능력과 의사 표현 능력이 떨어지고 속기 쉬워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사기·갈취·성폭행…장애인 대상 범죄 '만연'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사기나 갈취, 성폭행 등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최근 장애인을 협박해 대출을 받도록 한 뒤 이를 빼앗은 혐의(감금·폭행 등)로 박모(39)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고교 동창생인 이들은 지난 3월 7일 오전 9시 20분께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 지적 장애인 이모(37)씨가 출근하는 것을 보고 승용차에 강제로 태워 "시키는 대로 안하면 죽는다"고 협박해 은행에서 900만원을 대출받도록 한 뒤 이를 강탈하는 등 지금까지 같은 수법으로 3차례에 걸쳐 2천200만원을 빼앗았다.

박씨는 이씨와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알게 됐고, 직장에 함께 다닐 때도 이씨를 때리는 등 가혹 행위를 해온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지적 장애가 있는 노숙인을 어선에 팔아넘겨 수년간 임금을 착취한 일당도 경찰에 적발됐다.

전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수년간 노숙인을 어선에 강제로 태워 일을 시키고 임금과 산업재해보험금을 착취한 혐의(영리유인 등)로 김모(45)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지적 장애 노숙인 A(53)씨를 유인해 지난 2011년 10월 충남 태안의 어선 선주에게 선불금 280만원을 받고 넘기는 등 2015년 12월까지 3차례에 걸쳐 임금 1천280만원을 가로채고 A씨의 산업재해보상금 등 1천400여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지능지수(IQ)가 49에 불과해 지적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김씨 등은 A씨의 상태를 악용해 월 100만∼150만원인 A씨 급여를 수년간 착취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돌보는 지적 장애인을 폭행한 혐의(장애인복지법 위반)로 사회복지사 이모(46)씨와 김모(47)씨가 구속 기소됐고, 2010년에는 대전지역 고교생인 B군 등 16명이 2009년 5월 25일께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C(당시 14세·지적장애 3급)양을 서구 둔산동의 한 건물 남자화장실로 유인해 성폭행하는 등 같은 해 6월20일까지 한 달여 동안 C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특히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장애인 대상 성범죄 발생건수는 2010년 350건에서 2011년 408건, 2012년 727건, 2013년 997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다 2014년에는 1천236건을 기록했다.

2010년 대비 3.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 "사회적 약자 배려 부족"…"사회안전망 강화해야"
지적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만연하는 것은 범죄에 취약한 이들의 특성 뿐만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앙 장애아동·발달장애인 지원센터 명노연 변호사는 "이들은 의사표현 능력이 떨어지고, 작은 호의를 보이면 쉽게 속기 때문에 범죄에 악용되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쓸 가능성이 크다"며 "경제 불황 등 각박한 현실에서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한 데다 아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발달 장애인 전담 경찰이나 검사들이 아직 완벽하게 지정되지 않고, 이들에게 피해가 발생해도 조사받는 과정에서 진술 조력인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억울한 부분을 표현 못 하는 사례도 많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대덕대 사회복지학과 송혜자 교수는 "지적 장애인 시설 내 범죄는 이들을 돌보는 직원들의 개인적 성격 요인 또는 업무 스트레스에 따른 것"이라며 "지적 장애인들은 반복적으로 학습을 시키더라도 효과가 없고 항상 제자리인 경우가 많은데 그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호의적인 이들의 특성상 10대 지적 장애 여성은 성과 관련한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성폭력이 무엇인지 학습이 안돼 있다 보니 정상인들보다 성적 대상으로 삼기 쉬운 범죄 타깃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심우찬 교수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러한 범죄가 장애인에 대한 인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그에 따른 교육도 많아지는 등 바람직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며 "지적 장애인들은 20년전에도, 5년전에도 늘 약자였는데 오늘도 약자다.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복지여야 하는데 그런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적 장애인이 우리 사회 내에서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안 돼 있다"며 "약자를 위한 보호 체계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명 변호사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모두 같은 사람이고, 모두 인권을 가진 존재"라며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인권의식을 높이는 쪽으로 유도하는 등 인권 교육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도 "범죄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중요한 결정을 혼자 하지 말고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혹시라도 주변 사람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대한다면 즉시 위험 사항을 알려 줄 수 있는 비상경보 시스템 등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kj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