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장기근속자 모아 부서 신설…'퇴직 유도' 내부보고서도

성과가 낮거나 오래 근속한 직원들의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하려 사전에 협의 없이 새로 만든 부서에 전보시킨 인사발령은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부(권기훈 부장판사)는 A증권사 소속 직원 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전직무효 확인 등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인사발령이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다만 직원들이 인사발령으로 입게 된 손해배상액은 1심보다 다소 낮게 인정됐다.

1심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총 3억4천7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항소심은 총 2억8천900여만원으로 낮췄다.

A사는 2010년 간접투자상품 일종인 '랩(Wrap) 상품' 영업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랩 영업부'를 신설하고 직원 총 20여명을 이 부서에 배치했다.

인사 대상자들은 대체로 영업 실적이 저조하거나 장기 근속 중이었다.

그러나 A사가 랩영업부를 신설할 때 회사에는 이미 비슷한 영업을 하는 '랩운용본부'가 있었고, 회사 측은 새 부서에 영업을 위한 고객상담실이나 사무집기 등을 배치해주지 않았다.

A사는 랩영업부 사무실을 본사 16층 좁은 공간에 배치했다가 이후 지하 1층, 13층, 다른 지역 사옥 5층 등으로 수시로 옮기도록 했다.

이 회사 랩영업부 팀장이 2012년 8월 업무보고서에 '랩영업부 구성은 명예퇴직, 직군 전환 거부자들을 정상적인 업무환경이 아닌 곳에 배치해 퇴직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기록한 사실도 드러났다.

직원들은 "업무상 필요 없는 전직이고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A사는 "경륜이 있는데도 실적이 저조한 직원들에게 재도약 기회를 주기 위해 인사 조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1심은 "랩영업부 업무가 다른 부서의 업무와 상당 부분 중복되는데도 별도로 부서를 신설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도 "A사가 랩영업 중요성을 내세우면서도 영업 실적이 저조하고 관련 지식이 부족한 직원들만 배치했다"고 지적하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