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 기피하는 열악한 현장서 안전사고 다반사
정당한 권리 요구에 '이탈 신고' 등 보복 위협
전문가들 "외국인 근로자를 우리 동료로 생각해야"


국내 외국인 체류자 100만명 시대다.

그러나 산업 현장 곳곳에서 각종 인권 침해에 시달리는 외국인 근로자의 시름이 깊다.

내국인이 꺼리는 일을 대신하고 있지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열악한 근무조건을 참아야 하고 권리를 요구하면 사업주로부터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우리 동료로 생각해야"고 강조한다.

◇ '위태위태' 열악한 근무 환경

외국인 근로자 상당수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한다.

지난해 8월 강원 춘천의 한 교량 보수공사 중 몽골인 L(30)씨와 M(42)씨 등 2명이 10m 아래 강물로 추락해 숨졌다.

사고 직후 L 씨는 물에 빠져 숨졌고, 함께 추락한 M 씨는 실종 8시간여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이들은 교량 난간과 연결된 10m 길이의 작업 발판에서 파쇄한 콘크리트 잔해물을 상판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공사업체 관계자들은 작업 현장의 위험 요소나 작업 발판 지지대 설치의 하자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안전난간의 발 끝막이 판을 미인증 분진보호망으로 대체하는 등 공사 현장의 안전관리·감독도 소홀히 했다.

안전교육을 시행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근로자들이 구명조끼를 벗는 등 위험한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을 방치했다.

작업 발판 지지대를 연결하는 장치도 노후한 것을 사용했다.

네팔인 타파(24)씨는 올해 6월 1일 경북 고령군의 한 제지공장 원료탱크 안에서 종지 찌꺼기를 청소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돼 숨졌다.

회사 측은 원료탱크 안에 들어가기 전 환기하지 않았고 마스크도 없이 타파 씨를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4월 29일에는 경북 경주 감포항에 정박한 어선 태성호에서 폭발이 일어나 도장작업을 하던 인도네시아 선원 4명이 화상을 입었다.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내국인이 꺼리는 열악한 환경의 사업장에 외국인을 투입하고서도 사고만 나지 않으면 된다는 일부 사업주의 그릇된 인식이 문제"라며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줄이려면 더 적극적으로 감시·감독하고 사후 처벌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당한 권리 요구하면 '이탈 신고'

외국인 근로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면 일부 사업주는 관련 법을 악용해 보복한다.

2012년 3월 국내에 입국한 네팔인 D씨는 부산 기장군의 한 미나리 농장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직원 기숙사는 농장에 딸린 비닐하우스였는데 샤워시설은 물론 화장실도 없어 가스레인지에 냄비에 물을 끓여 몸을 씻고 강 주변에서 볼일을 봐야 했다.

강에 살얼음이 얼 정도로 초겨울 추위가 여전하던 3월. 농장주의 아내는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이던 D씨에게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며 화를 냈다.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휴일도 없이 일했지만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D씨는 여름에 기숙사에 뱀이 출몰하자 지역 고용센터에 업체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농장주는 관련 기관에 D씨가 사업장을 이탈했다는 거짓 신고로 답했다.

약 3개월 뒤에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까지 D씨는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도 동두천의 한 의류업체 사업주는 2014년 외국인 근로자 15명을 상대로 1인당 250만∼300만원의 임금을 상습 체불했다.

견디다 못한 미얀마와 네팔인 근로자 3명이 고용부에 진정을 내고 임금 지급을 요구했으나 이 사업주는 오히려 근무지 이탈 신고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2명은 진정을 취소하고 체불임금까지 포기, 작업장에 복귀해야 했다.

나머지 1명인 다른 네팔인 A씨는 기숙사비 과다 공제 등에 항의하며 고용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를 겪었다.

사업주는 A씨를 연장 근로에서 제외한 데 이어 폭행범으로 신고했다.

사업주에게 멱살을 잡혀 끌고 가는 과정에서 사업주를 밀친 게 화근이 됐다.

지역별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상담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업장 이탈(무단이탈신고)이다.

2010년 4월 개정된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이를 조장하는 근거로 지적된다.

과거 외국인 근로자들은 1년만 참고 견디면 더 좋은 사업장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이제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은 쉽지 않다.

박선희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국장은 "외국인 근로자는 입국 전 본국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데, 회사 이름과 월급 정도만 듣고 들어와 일을 시작한다"며 "근로계약 기간은 3년으로, 아무리 노동 환경이 열악해도 사업장을 옮길 수 없는 처지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장 변경은 휴·폐업이나 근로조건 위반, 부당한 처우 등의 사유로 인해 사회 통념상 근로를 계속할 수 없는 경우에 가능한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너 불법 체류자지?" '아니면 말고 식' 단속 여전

불법 체류 여부를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벌어지는 '아니면 말고 식' 단속 역시 외국인 근로자에겐 큰 공포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상담 사례에서 이들의 두려움은 그대로 드러났다.

한 외국인 근로자는 군 지역 고추농장에서 일하다 출입국관리소 직원 7명이 자신과 동료 등 17명에게 저녁도 먹이지 않은 채 수갑을 채워 감금시킨 일을 겪었다.

당시 이들은 속옷 차림으로 컨테이너에 감금돼 조사를 받았다.

이 외국인은 국가인권위에 "비인도적이며 비신사적인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행동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도 좋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깻잎 농사를 짓는 한 내국인은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량에 1시간 동안 감금당한 것을 국가인권위에 털어놓았다.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은 갑자기 들이닥쳐 조사를 벌였다.

농장 주인의 며느리는 결혼 이주여성이었고 임신 중이었다.

이 여성은 합법적으로 국내에 입국한 네팔인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불법 체류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농장 주인은 "모든 외국인 근로자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했지만, 출입국관리소 측은 오히려 그런 대응을 업무방해로 규정했다.

◇ "한국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불신 우려

한국에서 각종 차별을 경험한 외국인 근로자는 한국인을 믿지 않는 경향을 보일 우려가 있다.

올해 4월 18일 오후 1시 30분께 청주 외국인 보호소 시설에 구금 중이던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A(33)씨가 2m 이상 높이의 철창 살에 끈을 묶고 목을 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파키스탄인과 폭행 사건에 연루돼 보호소에 입소했던 A씨는 다행히 곧바로 보호소 직원들에 의해 발견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청주 이주민 노동인권센터 측은 A씨가 지난해 보호소 직원들이 자신을 폭행한 사건을 고소한 사건 이후 보복 조치로 자신이 아파도 외부 병원에 보내주지 않는데 반발, 극단적인 시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안정을 되찾은 A씨는 "한국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라며 한국인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보호소 측은 강제 출국을 피하려는 A씨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1년 6개월 정도의 보호소 생활 중 몸무게가 30㎏ 줄었다고 주장했다.

안건수 청주 이주민 노동인권센터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단순한 경제적 도구가 아닌, 인권을 누려야 할 인격체로 대할 때 가혹 행위나 폭행 논란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경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센터장은 "일손이 모자라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놓고 월급을 달라고 하면 사업주는 불법 체류자를 운운하며 '이상한 애국자'가 된다"며 "과거 '산업연수생'으로 불리던 외국인들을 엄연한 '근로자'로 인정하고 우리의 동료라고 여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재홍 이재현 우영식 김형우 강영훈 정회성 손대성)


(전국종합=연합뉴스) pitbul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