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우환 화백의 위작 논란과 관련해 진품임을 주장하는 이 화백은 물론 진품 주장을 '사주하는 사람'까지 조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 화백을 둘러싼 위작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모양새다.

경찰 수사가 위작 의혹이 제기된 13점의 작품에 국한하지 않고 이 화백 및 주변인으로 확대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곧 복마전과도 같은 미술품 유통망, 즉 화랑이 수사선상에 오를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상원 서울경찰청장은 11일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위작 논란과 관련, "이 화백이 처음 경찰에 출석했을 때 국과수 감정 결과를 설명했더니 아무 얘기도 못 했지만, 이틀 후 다시 와서 모두 진작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하는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게 보고 있다"면서 "이 화백이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이 화백이) 왜 그렇게 하는지 사주하는 사람이 있는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청장의 이런 입장은 이 화백이 경찰의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위작 의혹이 제기된 작품 13점에 대해 '진품과 다르다'는 의견을 냈는데도 이 화백이 "틀림없는 내 작품"이라고 반박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이 화백은 경찰이 수사 중인 의작 의혹 작품을 본 뒤 지난달 30일 "작가는 보면 1분도 안 돼서 자기 것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면서 해당 작품이 모두 틀림없는 진품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그는 이 과정에서 "13점 중 4작만 위작으로 하자"고 제안했다면서 경찰의 회유설까지 제기했다.

경찰은 즉각 회유설을 부인했다.

이 화백은 현재 객관적 증거 확보를 위해 경찰이 위작이라고 지목한 작품이 포함된 도록을 찾겠다며 일본으로 출국한 상태다.

경찰이 위작으로 지목한 작품들은 이 화백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1978년과 1979년에 제작한 것으로 표기돼 있으며 만약 도록에서 작품을 찾아내면 이 화백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확실한 자료가 된다.

이 화백 측은 아울러 외부 기관 등을 통해 재감정을 검토하는 등 경찰의 주장에 대한 대응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찰은 이런 상황에서 수사 대상 확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특히 '사주하는 사람'에 대한 수사는 화랑에 대한 수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미술계에 파문을 불러올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미술계 일각에선 이 화백이 자신의 작품 거래를 거의 전적으로 도맡다시피한 한 화랑과의 관계 때문에 위작 논란과 관련해 "모두 진품"이라는 주장을 고수한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위작을 인정하는 순간 이 화랑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을 고려해 위작 가능성을 부인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문제는 위작 사건의 경우 수사로 논란이 정리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2009년 서울중앙지법은 위작 논란이 제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와 관련, 진품이 맞지만 위작 의혹을 제기한 것도 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의 '진품' 판결에도 여전히 이 작품이 위작이라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반면 수사가 길어질 경우 세계 미술계에서 생전에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한국 화가인 이 화백의 명예가 더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 화백은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본인도 지난 기자회견에서 작품 거래에 타격이 있다고 밝혔다.

미술사가인 이연식 씨는 "미술사에서 작가와 사법당국이 위작을 놓고 서로 대치하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면서 "어떤 식으로든 작가에게는 굉장한 타격"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luc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