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된서리 맞기 전에…종로 한정식집 60년 만에 문 닫는다
국회의원과 장·차관, 기업인 등 정계와 관계, 재계 인사들의 단골 식당으로 잘 알려진 한정식집 유정이 60년 만에 문을 닫는다. 상당수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옮긴 뒤 손님이 급감한 데다 접대비 한도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오는 9월28일 시행될 예정이어서 매출 타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식당 자리엔 한정식보다 가격이 싼 베트남 쌀국수집이 들어선다.

10일 한정식집 유정에 따르면 이 식당은 오는 15일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한 달 보름가량 공사를 거쳐 다음달 말께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상호(미정)를 바꿔 새롭게 문을 열 계획이다. 손정아 유정 사장은 “20년간 식당을 운영하던 고모로부터 물려받아 40년을 이어왔다”며 “단골들에게서 ‘아쉽다’는 연락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부처들이 세종시로 내려간 이후 손님이 줄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적자 폭이 더 커질 것 같아 문을 닫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새로 문을 여는 베트남 쌀국수집은 손씨의 아들이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정은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일대에서 60년간 전통을 이어온 고급 한정식집이다. 조용한 분위기와 정갈한 경상도 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故) 박정희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장·차관, 기업인 등이 자주 찾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이후까지 꾸준히 찾은 단골손님으로 꼽힌다.

고급 한정식집이 1만원 안팎의 메뉴가 주류인 쌀국수집으로 바뀌는 데는 김영란법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유정은 1인당 점심 3만5000원, 저녁은 5만5000원이다. 단일 코스로 계절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김영란법은 공무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은 이해 관계자와의 식사비(1회)가 1인당 3만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종로에 있는 한정식집 가운데 매물로 나온 곳이 수십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은지/마지혜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