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나 서울아산병원 교수팀, 장내 세균으로 비만·당뇨 잡는다
국내 연구진이 사람의 장 속에 사는 특정한 세균이 효소와 호르몬 분비를 조절해 체중과 혈당을 줄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만과 당뇨 등 대사성 질환 치료법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권미나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사진) 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장내 세균인 ‘박테로이데스 에시디페시언스’가 지방 분해 효소 분비를 늘려 체중과 지방량을 줄이는 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세균은 소장의 호르몬 조절 상피세포를 활성화하고 혈당 감소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분비를 촉진해 체내 혈당을 줄였다. 혈중 인슐린 양은 증가시켰다.

장내 세균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 몸의 장 속에는 500종류가 넘는 세균이 살고 그 수는 100조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게만 1㎏이 넘는다. 장내 세균 무리는 종류에 따라 염증을 일으키거나 막는다.

장내 세균 수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병에 걸린 사람일수록 유익한 장내 세균이 줄고 나쁜 균이 늘어 다양성이 줄어든다. 한번 나빠진 장내 세균은 회복하기 어렵다.

장내 세균은 소화기능과 면역기능 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장내 세균 구성비가 비만과 관련 있다는 발표가 나온 뒤 장내 세균과 비만, 당뇨의 연관관계를 찾는 연구가 많이 이뤄졌지만 원인이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를 통해 장내 세균이 대사 작용을 조절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번 연구는 장내 세균 군집이 아닌 박테로이데스 에시디페시언스라는 특정 세균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치료제 개발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동물실험 결과 박테로이데스 에시디페시언스는 복부 지방세포의 신호 전달체계인 ‘TGR5’ 수용체를 활성화해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인 ‘PPARα’를 증가시켰다. 콜레이트 타우린 등 담즙산의 양을 늘려 혈당을 줄이는 호르몬인 GLP-1도 증가시켰다. 이 세균으로 인해 GLP-1을 감소시키는 디펩디딜 펩티다아제(DPP4) 호르몬은 줄었다.

권 교수는 “특정 장내 세균이 체중과 혈당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새롭게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비만과 당뇨 등 대사성 질환 치료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산균처럼 인체에 유익한 균을 살아있는 채로 섭취하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과 같이 박테로이데스 에시디페시언스를 대량 배양해 체질 개선제나 치료제로 활용하면 대사성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항생제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도 했다. 그는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유익한 장내 세균의 대사 조절을 방해한다”며 “이로 인해 비만과 당뇨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 중견연구자 도약 사업 및 보건복지부 중개연구 사업 지원으로 진행됐다. 국제학술지인 점막 면역학(Mucosal Immun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