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원전 밀집지역 주민 '패닉', 고층건물 주민 '아찔'
미세한 땅 꺼짐에도 인근 주민 "지진 여파다" 조마조마

5일 울산 동구 동쪽 52㎞ 해상에서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다섯 번째로 큰 규모(5.0)로 발생한 지진은 그동안 국민 마음속에 있는 지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표출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애써 외면했던 지진 관련 안전문제가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5일 지진은 동해안은 물론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지진동을 감지할 정도로 무게감이 있었다.

지진 발생 후 불과 2∼3시간 만에 전국 119에 무려 7천918건의 신고 또는 문의전화가 걸려온 것만 봐도 국민의 공포와 불안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다.

◇ 방폐장·원전 밀집지역 잇단 지진…주민 '패닉'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과 원전 20기가 밀집하는 부산, 울산, 경북 지역 주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경북에는 경주에 방폐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월성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울진군에도 한울원전 6기가 들어서 있다.

부산과 울산에 걸쳐 있는 고리원자력본부에는 부산 쪽에 6기가 가동 중이고 울산 쪽에 2기가 시운전을 하고 있으며 2기가 추가로 건설허가를 받은 상태다.

이들 지역에 올해만 지진이 10차례나 있었다.

1월 6일 경북 김천시 남쪽 14㎞ 지점에서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5일까지 규모 2.1∼5.0의 지진이 내륙과 해안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경북 울진에서는 2004년 5월 29일에도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역대 2위인 규모 5.2의 지진이 발생한 바 있다.

월성원전 근처에 사는 이상우(50)씨는 6일 "어제 갑자기 방바닥이 꺼지는 듯한 지진을 경험하고 나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재난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박혜령 영덕핵발전소 반대 범군민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경주 등 동해안에 대형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원전을 끼고 사는 주민으로서 대형 지진이 나면 어떨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몸서리쳤다.

그는 "아수라장이 되고 난 뒤에는 후회해도 늦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고리원전 근처인 울산 울주군 온양읍에 사는 김모(63)씨는 "그동안 지진피해를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무섭다"고 토로했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조창국씨는 "정부는 원전이 안전하다고만 하는데 제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인근 주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리원전 근처에 사는 이모(42)씨는 "이제 불안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 미세한 땅 꺼짐에도 인근 주민 '조마조마'
6일 오전 부산 사하구에는 다급한 전화가 2차례 걸려왔다.

감천1동의 한 이면도로가 지름 1m가량 2∼3㎝ 깊이로 꺼졌다는 신고였다.

이 마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동네 어르신들이 매일 다니면서 보는 길인데 지진 전에는 없었던 땅 꺼짐 현상이라는 게 공통된 생각이었다"면서 "그래서 부랴부랴 신고했다"고 말했다.

사하구는 곧바로 직원들을 현장으로 보내 도로 아래로 지나가는 도시가스 배관에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하고 있다.

직원들은 몰려든 주민을 안심시키느라 진땀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번의 전화는 신평동의 한 4층 건물 옥상 바닥에 지진 여파로 실금이 갔다는 피해 신고였다.

담당 직원이 급히 달려가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구의 한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된 2건 모두 지진피해인지 확실하지 않다"면서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강진에 내진 설계 문제 '뜨거운 감자' 부상
이번 지진으로 초고층 건물을 비롯해 지진대피소, 공공시설물 등의 내진 설계 문제가 뜨거운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초고층 건물은 지진 영향을 저층보다 많이 받는다.

부산대 건설융합학부 오상훈 교수는 "같은 조건에서 10층짜리 아파트의 10층이 좌우로 1㎝ 흔들리면, 50층짜리 아파트의 50층은 6∼7㎝까지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와 센텀시티에는 30층 이상 고층건물이 90채가 넘고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도 20여 채다.

근처에는 몇 년 안에 100층이 넘는 건물도 들어선다.

이 초고층 건물들은 비교적 최근에 건립돼 내진 설계가 거의 완벽한 수준이라 안심해도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구조체 내진 설계에만 해당한다.

지진동의 영향을 더 받는 고층건물의 유리나 타일 등 외장재(비구조체)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지진동으로 유리나 타일이 깨지는 것은 물론 승강기 고장이나 가스 배관 파손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2차 피해 가능성은 해당 건물이 연약지반 위에 있을 때 더 크다.

국내는 서울 강남, 인천 송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등이 대표적인 연약 지반이다.

국민안전처는 올해 5월 "비구조체 내진 설계기준 도입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해운대구 마린시티 주민 신모(54)씨는 "어제 지진동을 몸으로 느끼고 나니 '대지진이 발생하면 꼼짝없이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각적인 점검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빨리 몸을 숨겨야 하는 지진 대피소 등의 부실한 내진 설계 문제도 새삼 부각됐다.

부산시의회 박성명 의원이 부산시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산 시내 지진대피소 302곳 중 내진 설계를 적용한 곳은 129곳에 불과했다.

57%가 내진 설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대피소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 역시 14만1천494명으로 부산 인구의 3.97%에 불과하다.

내진 설계 대상인 공공시설물 2천27개 가운데 내진 설계를 적용한 건물도 24.7%인 502개에 그쳤다.

지진 대피소는 초·중·고등학교 건물이나 체육관·강당 등 부속건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의 초중고교 및 특수학교(공립 유치원 포함)의 내진 설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도내 3천451개 학교 내 건물 4천920채 중 3천335채가 내진 설계가 필요한 건물이다.

전체 학교 건물의 67.7%가 내진 보강대상인 셈이다.

전국적으로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모든 학교 건물에 대한 내진보강에는 4조원대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교육부는 추산했다.

그러나 올해 전국 시·도 교육청이 본예산으로 편성한 사업비는 670억원(1.6%)에 그쳤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르면 올 연말 '내진보강 예비검토제'를 도입해 내진성능이 있는 학교를 제외하고 예산 투입이 시급한 학교를 가려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임상현 박창수 민영규 이영주 김재홍 차근호 허광무)


(전국종합=연합뉴스) youngkyu@yna.co.kr